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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SS 금융가이드
배워봅시다
  • 블랙스완 넘어
    그린스완의 위기

    • 글. 김고금평 머니투데이 문화부 기자
  • 백조(白鳥)는 뜻 그대로 순백색이다. 그런데 검은 백조(The black swan)라면 한 달에 두 번째로 뜨는 보름달(blue moon)처럼 ‘극히 드문’(once in a blue moon) 일을 경험하는 것이다. 1950년 스웨덴, 1951년 캐나다에 산불이 났을 때, 그리고 1883년 인도네시아의 크라카타우 화산이 분화했을 때 블루문이 관측됐다고 알려졌다. 검은 백조 역시 17세기 한 생태학자가 호주에서 발견해 불가능의 영역을 가능한 일로 수긍하게 했다. 최근엔 중국 베이징 텐안먼 광장에 ‘블랙스완’이 등장해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극단적인 0.1%의 가능성이 모든 것을 바꾼다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빗대 ‘블랙스완’ 이라고 부른다. 월가 투자전문가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자신의 저서 ‘블랙스완’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 사태를 예언하면서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미국이 2000년대 초반 경기부양책으로 초저금리정책을 펼쳤는데, 대출금리보다 주택가격 상승률이 높아지자 주택 거래량이 폭증했다. 하지만 2004년 미국이 저금리정책을 종료하면서 미국 부동산 버블도 꺼졌고 대출자들은 원리금을 제대로 갚지 못하면서 세계 경제시장까지 타격을 줬고 결국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촉발했다.
당시엔 어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수순이었다. 탈레브는 ‘블랙스완’의 속성을 △일반적 기대 영역 바깥에 존재하는 관측값(이는 검은 백조의 존재 가능성을 과거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없기 때문) △극심한 충격을 동반 △존재가 사실로 드러나면 그에 대한 설명과 예견이 가능 등으로 기술하고 있다. 한마디로 발생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가져온다는 얘기다. ‘극단적인 0.1%의 가능성이 모든 것을 바꾼다’ 는 주장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경제 충격, 금융위기 재현 우려

2008년 금융위기를 겪고 나서 ‘희귀한’ 블랙스완은 우리 사회 곳곳에 드리운 갑작스러운 사고나 경제 충격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로 통용되고 있다. 피자 한 판 주문 가격이던 비트코인 한 개가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화폐 패러다임, 구글이라는 첨단 IT기술을 등에 업은 기업의 대약진 등은 모두 블랙스완의 대표적 사례로 꼽힐 만하다.
금리도 우습게 보면 큰코다치기 쉽다. 가계대출 금리가 단기간 내 1%p(포인트) 상승하면 은행권 가계대출 연체액이 최대 5조4000억 원까지 늘어나고 연체율은 0.62%p까지 급등할 수 있다는 분석이 최근 나왔다. 현재 가계대출 연체액 1조7000억 원, 연체율 0.2%를 고려하면, 금리가 1%p만 올라도 연체액과 연체율이 4배 이상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8월 ‘금리 인상과 블랙스완의 가계대출연체율 영향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최근 10년간 은행권 가계대출이 잔액 기준 2011년 1·4분기 435조1000억 원에서 2021년 1·4분기 868조5000억 원으로 연평균 7.0% 증가했다고 밝혔다.
가계대출이 이처럼 빠르게 늘어난 이유는 가계 소득원 약화와 주택담보 대출의 증가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8월 기준금리를 0.25%p 인상했고 또 오를 가능성이 작지 않은 데다, 미국이 연말쯤 테이퍼링(채권매입 축소)을 단행한 뒤 내년에 금리 인상을 시작하면 2008년과 같은 금융위기가 재현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특히 인플레이션은 블랙스완으로 변할 조짐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도 그린 스완의 위험국이다

이제 세상은 코로나19에서 보듯 과거에는 의미가 없던 미세한 확률의 불확실한 사건이 자꾸 등장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블랙스완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위축되고 기업은 현금 비중을 높인다. 코로나19 이후의 불확실성은 인류에게 또 예고된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새로운 불확실성으로 기후변화를 꼽고 이를 ‘녹색 백조’(green swan)라고 이름 붙였다. 이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올해부터 195개국(세계 탄소의 약 95%를 배출)이 참여하는 신기후체제가 시작됐다. 그린 스완은 물리적 위험과 이행 위험으로 나뉜다. 이상 기후로 침수, 화재 등이 발생하면 이는 금융권의 담보자산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사회적 물적 피해가 늘어나면 보험금이 준비금을 넘어설 수도 있다. 이는 모두 물리적 위험에 해당한다.
저탄소 사회로 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행 위험은 고탄소 기업의 채무상환능력 저하에 따른 부도율, 손실률 상승이 대표적이다. 다른 측면에서 주목받는 것은 좌초자산인데, 탄소 배출의 주범인 석탄과 원유 등의 생산 제한에 따라 관련 자원과 산업 설비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한 연구에 의하면 화석연료로 잃는 좌초자산은 1~4조 달러에 이른다.
한국도 그린 스완의 위험국이다. 무엇보다 철강, 화학 등 고탄소산업의 비중이 높아 이행 위험이 다른 나라에 비해 클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해석이다. BIS는 블랙스완은 발생 후에야 알 수 있지만, 그린 스완은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있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블랙스완은 충격이 있을 수 있으나 해결할 수 있고 그린 스완은 충격을 되돌릴 수 없는 성격을 갖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새로운 불확실성으로 기후변화를 꼽고 이를 ‘녹색 백조’(green swan)라고 이름 붙였다. % green swan
근본적인 대책, ‘지속가능 금융’

아직 제대로 겪어보지 못한 그린 스완의 충격은 블랙스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무엇보다 인류에게 시스템적 위험보다 실존적 위협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복잡한 연쇄작용과 예측할 수 없는 환경적·지정학적·사회적·경제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최근 전 세계적인 유행어가 된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가 선택이 아닌 필수 요소로 채택되는 것도 이 같은 흐름과 상황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결과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ESG 금융이나 탄소 중립 등 녹색 금융 활성화 전략 같은 지속가능 금융이야말로 새로운 사회의 가능성을 제시할 가장 근본적인 대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