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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SS 금융가이드
전문가 리포트

열린 문화 프로젝트의
성공 조건

  • 글. 이한상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금융감독자문위원)

금융감독원은 지난 2월 21일 열린 문화 프로젝트 추진을 발표하였다. 최근 감사원이 권고한 소비자보호 기능 강화 등 제도적 하드웨어 개선과 병행해 일하는 방식과 조직 문화 개선이 필수불가결함을 이해한 전략적 선택으로 보인다. 탈권위주의·소통·역지사지의 3대 기조 하에 전문성·도덕성·창의성 등 3대 분야를 강조하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알차게 제시되어 있다. 간섭은 줄이고 외부 의견을 경청하며 수평적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사실 금융감독원의 자성의 노력은 2011년 이후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필자가 귀국한 2011년부터만 생각해 봐도 저축은행 사태에 대응한 권혁세 원장의 ‘2011 금감원 쇄신 방안’, 카드사 정보 유출 및 동양 CP사태에 대응한 진웅섭원장의 ‘2015 금융감독 쇄신 및 운영 방향’, 채용비리 사건에 대응한 최흥식 원장의 ‘2017 금감원 쇄신안’이 열린 문화 프로젝트와 일맥상통하는 아이디어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은, 돌려 말하면 그간의 노력이 충분한 결실을 맺지 못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 열린 문화 프로젝트를 어떻게 성공시킬 것인가?

반성과 성찰을 통한 변화관리의 스토리를 만들어라

열 명이 한 명 도둑을 막아내기 힘들다는 속담이 있다. DLF, 라임, 비밀번호 사태는 금융감독원의 잘못을 탓하기에 앞서 믿었던 은행마저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감도 안 잡힐 정도로 허술하게 운영한 내부통제가 진짜 문제였다. 잘못한 것은 은행과 금융업자들인데 과도한 비난이 금융감독원에 쏟아졌다. 검사 인력은 부족했고, 정책당국의 규제완화는 시한폭탄이었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 바로 은행, 금융업자, 정책 당국이 아닌 감독당국의 허물은 무엇이었을까를 허심탄회하게 반추할 기회다. 반성과 성찰 없는 쇄신안은 반드시 실패한다. 성공하는 변화관리는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며 스토리의 기초는 반성과 성찰이다. 그간의 혁신안과 쇄신안이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검토하는 것이 시작점이다.

최고경영진부터 변해야 한다

변화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최고경영진의 행동이다. 구체적으로 경영학자들이 언행격차(say-do gap)라고 부르는 말과 행동의 차이, 역할 모델의 문제다. 변화관리 캠페인은 외부의 충격에 대한 최고경영진과 간부들의 면피용 대응이라고 오해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그래서 이런 운동의 핵심 메시지가 정작 구호로만 그치고 간부들의 행태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열린 문화 프로그램은 예정된 실패를 경험할 것이다. 변화관리가 성공하려면 일선의 조직 구성원들이 최고경영자와 간부들의 새로운 방식으로 변했다는 것을 목격해야 한다. 그럼 변했다는 것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변화의 가치와 일치하는 신상필벌(信賞必罰)

오래전 인구에 회자되던 넷플릭스의 인사 원칙을 담은 ‘자유와 책임의 문화’라는 문건의 첫부분 ‘우리가 가치 있다고 하는 게 가치다’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많은 회사들이 그럴듯하게 들리는 가치 선언문을 가지고 있다. 엔론(지상 최대 사기 기업 중 하나였던)도 네 가지 가치로 이루어진 그럴 듯한 가치 선언문을 가지고 있었다. 온전함(Integrity), 소통(Communication), 존중(Respect), 그리고 탁월함(Excellence). 그러나 그럴듯하게 들리는 가치가 아니라 특정 회사의 진짜 가치는 누가 보상 받고 승진하며 퇴출되는가를 통해 드러난다. 열린 문화 프로젝트가 ‘조직이 변했구나’ 라는 구성원의 공감을 얻어내며 성공하려면 이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가치가 반드시 보상과 승진에 반영되어야 한다. 열린 문화를 주창하면서 승진과 보상은 구태를 답습한다면 프로그램은 실패한다. 어떻게 변화를 모색할 것인가?

전사적 실행과 지표 관리

조직 문화와 성과의 관계가 연구로 명확해지자 많은 조직이 문화 혁신 프로그램을 도입하지만 대개는 실패한다. 변화관리가 과제가 되면 기획부서가 전담 태스크포스를 만든다. 이들은 실질적인 개혁보다 기계적인 지표 설정, 성공 사례 발표, 결과 보고서 작성 그리고 이벤트를 자신들의 업적으로 간주하기에 혁신 없는 혁신의 주인공이 된다. 따라서 변화관리가 성공하려면 최고경영자가 변화 관리를 태스크포스에 일임하기보다는 전사적 참여를 강조하고 직접 챙겨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핵심은 각 부문의 참가자들이 동의하는 성과 평가 지표의 개발이다. 최고경영자가 이 지표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보상과 승진에 반드시 반영하어야 한다. 평가 지표의 디테일과 공정한 적용이 변화관리의 핵심이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더 강력한 조직으로 재탄생하기 위해서는
말뿐이 아닌 진정한 변화관리를 모색할 때다.
노조의 협력

청렴의 강조와 신상필벌은 중요한 변화관리의 일부다. 이번 프로그램도 청렴성을 강조하며 작은 개인적 하자도 보임의 결격사유가 되는 무관용 원칙을 천명했다. 그러나 한국적 상황에서 이러한 변화는 노조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으면 이행되기 어렵다. 노조의 협력과 이를 위한 감독원의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이유다.
저성장 환경에서 금융기관의 기회주의적 상품의 제조와 판매는 위험과 사고를 내포하고 있다. 완화된 개인정보 관련 입법은 금융감독 환경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금융사고는 종종 정책 및 감독 당국의 역량과 책임을 넘어서는 스케일로 일어난다. 정치권과 여론의 뭇매를 맞는 당사자들은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혁신안과 쇄신안을 만들어 위기를 빠져나가려고 한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삼아 더 강력한 조직으로 재탄생하기 위해서는 말뿐이 아닌 진정한 변화관리를 모색할 때다. 2011, 2015, 2017년이 변화 관리와 쇄신안의 성패를 겸허하게 평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라. 금번열린 문화 프로젝트는 그간의 혁신안을 망라한 모범답안이다. 모범답안이 있으면 남은 것은 실행하는 것뿐이다. 금융감독원의 건투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