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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REVIEW
  • 언택트 시대의 트렌드,

    새로운 소비 문화에
    주목하라!

    • 글. 윤태영 연세대학교 생활환경대학원 교수
  • 소비 패턴이 변화하고 있다. 언택트 시대가 도래하면서 빠르고 저렴한 것을 뛰어넘어 고객의 마지막 접점까지 만족스럽게 한다는 ‘라스트핏 이코노미’가 소비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것. 라스트핏 이코노미의 파급력이 심상치 않다.
마지막 순간의 편의와 만족을 위한 소비

최근 우리 주변에서 마지막 순간에 경험하게 되는 편의와 만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유튜브 등 각종 매체에서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되는 언박싱(unboxing)이 대표적이다. 언박싱은 상자를 연다는 뜻으로, 구매한 상품의 상자를 개봉하는 과정을 말한다.
언박싱이 중요해진 이유는 그 과정에서 상품 실물을 처음으로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상품 외에도 포장 박스의 재질이나 색상, 디자인 등 여러 요소의 경험이 소비자의 만족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가 오프라인 매장에서 쇼핑할 때 상품 외에도 매장 직원의 태도나 조명, 음악, 디스플레이 등에 영향 받는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되는 대목이다. 언택트 비대면 구매에서 소비자가 제품의 실물을 처음으로 경험하는 순간, 그리고 상품에 대한 욕망이 충족되고 실현되는 극적 순간이 언박싱의 과정을 통해 최후의 접점에서 일어난다.
마지막 순간의 편의와 만족을 위한 소비는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 중이다. 먹거리를 사는 경우 오후 늦게 주문해도 다음 날 새벽에 집 앞까지 배달해주는 새벽배송을 이용한다. 그 이유는 근처에 대형 쇼핑몰과 식료품점이 있지만 ‘핑거 쇼핑’이 주는 편리함과 비대면의 편안함 때문이다. 세탁이나 수선은 칼 배송을 보장하는 모바일 세탁소를 이용한다. 집 앞에 빨랫감을 두고 앱으로 업체를 부르면 24시간 이내에 세탁물을 받을 수 있다. 모두 터치 한 번이면 이루어지는 것들이다. 이 외에도 책이나 셔츠, 면도기, 생리대, 기저귀, 분유 등 생필품도 구독 형태의 결제를 하면 정기적으로 집까지 배송해주는 비대면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언택트 시대의 도래와 함께 사회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 감염병이라는 돌발 변수는 변화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그 결과 속속 등장하고 있는 서비스들은 2020년 주요 소비 트렌드 중 하나인 ‘라스트핏 이코노미’로 통칭된다. 라스트핏 이코노미는 서울대 김난도 교수가 「트렌드 코리아 2020」에서 올해 10대 소비 트렌드 중 하나로 소개한 바 있다. 라스트핏(Last Fit)은 라스트 마일(Last Mile)에서 영감을 받은 용어로 여기에 경제라는 뜻의 이코노미와 결합하여 등장한 개념이다. 이렇게 등장한 라스트핏 이코노미는 배송의 라스트핏(예: 새벽배송, 당일배송), 이동의 라스트핏(예: 전통킥보드), 구매 여정의 라스트핏(예: 언박싱)으로 세분화되어 발전하고 있다.

온라인 소비, 인간의 필연적 욕망

언택트 시대, 비대면 구매가 활성화되면서 라스트핏 이코노미 중 가장 강조되고 있는 것이 바로 배송이다. 온라인 쇼핑의 증가와 함께 배송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배송을 둘러싼 기업들의 경쟁은 새벽배송, 당일배송 등의 형태로 전쟁을 방불케 한다. 여기에 불편함과 느림을 참지 못하는 한국 소비자들의 특성이 더해지면서 배송시장은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에 들어선 모양이다.
한편, 언택트 상황이 증가하면서 현대인들의 생활 반경은 자연스럽게 좁아지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새로운 이동수단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전동킥보드다. 전동킥보드를 타고 주거, 쇼핑, 문화생활 등을 근거리 안에서 해결한다. 공연이나 쇼핑 등을 위해 먼 지역에 찾아가는 일도 이젠 불필요한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이동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 경비를 최소화하고 더 많은 여유를 갖고 싶어 한다. 그러다 보니 지역 기반의 거래 플랫폼이 활성화된다.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끼리 서로 필요한 것을 나누는 중고 직거래 앱이 화제가 되기도 한다. 최근 4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한 ‘당근마켓’이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본인에게 중요하고 가치 있는 물품에 대해선 신중에 신중을 기해 상품을 주문하며, 배송되어 오는 상품의 포장 박스까지 확인한다. 앞서 얘기한 언박싱의 순간을 즐기는 것이다.
이때 가격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구매하기 전부터 제품을 받는 순간까지 설렘과 행복한 마음으로 쇼핑을 마친다. 동시에 많은 기업은 소비자가 제품의 실물을 처음 경험하게 되는 이 마지막 1마일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럼 라스트핏 이코노미 소비 트렌드가 등장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앞서 얘기했듯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비대면 온라인 쇼핑의 확대에서 찾을 수 있다. 온라인에서의 구매로 인해 배송과 언박싱 과정이 중요하게 된 것이다. 기존 오프라인에서는 구매 즉시 바로 상품의 경험과 소유로 이어지며 즉각적인 욕망 충족이 가능했지만, 온라인에서의 구매는 구매 결정 이후 내 수중에 들어오기까지 시차(時差)가 발생한다. 이러한 시차는 상품에 대한 욕망을 더욱 자극한다. 원하지만 소유할 수 없을 때 그 대상에 대한 욕구는 욕망으로 변한다. 무릇 인간의 욕망이란 그 충족이 뒤로 미루어질수록 더 커지는 법이다. 소비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얘기할 때 종종 드는 비유가 상점의 쇼윈도다. 상점의 쇼윈도 너머에 진열된 상품은 손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닿을 것 같다. 쇼윈도는 투명하지만 유리가 나와 상품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 쇼윈도 너머의 상품을 만져보고 싶고 소유하고 싶지만, 유리로 인해 그럴 수가 없다. 이러한 이유로 상품에 대한 욕구는 욕망으로 발전하고, 그 욕망은 점점 더 커져간다.
비대면 온라인 구매의 과정에서는 시차가 쇼윈도의 역할을 대신한다. 시차의 발생은 상품에 대한 즉각적인 충족을 미루어 더 큰 욕망으로 발전시킨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의 욕망을 감안할 때 언택트 시대 온라인 소비는 필연적으로 더 빠른 상품 배송을 요구한다.

‘라스트핏 이코노미’의 가속화 요인

라스트핏 이코노미의 소비 트렌드는 1인 가구의 확대와 소셜네트워크 기술의 발달, 그리고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으로 더 가속화되고 있다. 이미 한국 사회는 1인 가구 수가 600만 가구를 넘어섰다. 1인 가구는 우리 사회 전체 가구의 30.2%1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가족 중심의 소비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한 소비에 더 관심이 많고, 개인의 취향이나 생활 패턴에 맞는 서비스나 제품을 선호한다. 또한, 이들을 중심으로 혼밥, 혼술, 혼행 등 1인 경제 소비 트렌드 역시 활성화되고 있다. 1인 가구에 속하는 많은 이들이 일과 일상을 함께하기 때문에 이들에겐 효율성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 따라서 편리하고 신속한 쇼핑이 중요해진다.
또한, 언택트 환경이 발달하면서 집에서도 원하는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자발적 홈족이 되는 젊은 층이 늘고 있다. 사람들과 복잡하고 피곤한 관계를 맺기보다는 집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며 편안함을 추구하는 현상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로 대표되는 젊은 소비자들은 어려서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자라왔다. 이들의 가장 큰 세대적 특징은 디지털 네이티브(디지털 원주민)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과 함께 성장했으며, 모바일과 온라인에 익숙한 이들은 비대면 형태의 서비스를 더 편하게 생각한다.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인간관계를 피하면서, 최적화된 만족의 조건 중 하나로 비대면 형태를 선택한다. 이렇게 이들은 홈캉스, 홈바, 홈카페, 홈트레이닝 등 집 밖에서 행했던 것들을 집 안으로 끌어들였고, 그러다 보니 굳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어졌다. 사실 현대사회의 소비자들은 소비를 통해 나를 표현하고 또 나와 타인을 구별지어 왔다. 그러나 집안에서 혼자의 생활이 많아지게 되고 소비가 비대면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게 되면 소비를 통한 구별 짓기는 그 의미가 퇴색된다. 이러한 변화는 자연스럽게 과시 소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하고, 또한 소유보다는 렌털 등의 방식으로 제품의 기능과 사용가치에 초점을 맞춘 소비로 이어지게 된다. 브랜드의 가치나 가격보다는 나의 취향과 개성에 부합된 실용적인 상품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1. 2019, KOSIS (통계청, 인구 총조사)
90년대생이 만들어 가는 새로운 소비 문화

라스트핏 이코노미 소비 트렌드는 세대적 특성이 매우 크게 작용한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소비문화는 가장 소비가 활발한 집단과 세대의 특성을 반영한다. 밀레니얼과 Z세대의 사회 진출은 이러한 서비스를 가속화시키며 새로운 소비문화를 만들고 있다. 주로 90년대에 태어난 이들은 명품과 저가 상품을 함께 소비하고, 인플루언서 마켓에 열광하며, 편의점 제품과 가정 간편식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세대다. 자기주장이 똑 부러지고, 흥청망청 쓰는 것 같지만 나름대로 의식 있는 소비를 한다.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고, 불편한 것은 참지 않으며 자신을 꾸미는 것에 돈을 아끼지 않는 세대다.2 밀레니얼로 대표되는 지금의 소비자들은 이제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을 반기지 않는다. 제품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즉시 구매를 결정하고 가격이 싼 유통 사이트를 찾는 데 걸리는 시간과 노력보다 클릭 몇 번이면 다음 날 아침 문 앞에 물건이 놓여 있는 것을 더 매력적으로 받아들인다.
여기에 또 한 가지 무시하기 어려운 것이 이들이 처해 있는 경제적 상황이다. 이들을 가리켜 ‘부모세대보다 못살게 된 첫 번째 세대’ 라고 한다. 참 난감한 부분이다. 이들의 부모세대는 경제가 급격히 성장하는 시기에 자산을 축적했다. 일자리 역시 상대적으로 풍부했다. 물론 부모세대의 피나는 노력과 고생이 뒤따른 건 당연하다.
그러나 저성장시대가 고착화되고 현대사회가 고도화되면서 이들은 자신들이 부모세대보다 잘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돈보다는 주어진 상황에서 삶의 만족을 더 중요한 가치로 받아들인다. 부모세대보다는 못 벌어도 더 즐겁고 만족하는 현재의 삶을 살겠다는 것이 밀레니얼 세대의 생각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주관적 만족과 효용에 충실한 소비를 추구한다. 이러한 이유들로 언택트 시대 라스트핏 이코노미는 잠깐 등장했다 사라지는 트렌드 정도로 그치진 않을 것 같다.
객관적인 가성비나 브랜드의 가치보다는 개인의 주관적인 만족과 경험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과시소비, 체면소비의 시대를 살아온 기성세대의 입장에서 이들이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는 소비문화가 참 신선하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온전히 자신의 만족을 위한 이들의 똑똑한 소비가 우리 사회의 소비문화를 보다 건강하게 발전시켜 가기를 희망하며 이들을 응원한다.

2. 곽나래, 「90년대생 소비 트렌드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