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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노믹스 시대와 자본주의 키즈
SPECIAL THEME
REVIEW
  • ‘인플루언서블 세대’,
    소비시장의 주도권을 잡다

    • 글. 고승연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Z세대는 그런 게 아니고’ 저자)
  • 인플루언서블 세대는 변화에 빠르고 불편함을 참지 않으며 소신대로 말하고 옳다고 믿는 것에는 본인들의 목소리를 선명하게 낸다. 더불어 스스로가 주변과 사회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그 영향력을 활용해 변화를 선도한다. 그렇게 인플루언서블 세대에 의해 소비시장은 변화하고 있다.
“Z세대, 젊은 몸에
오래된 영혼이 깃들어있다”

Z세대 전문가이자 ‘최강소비권력, Z세대가 온다’의 저자 제프 프롬은 필자가 경영전문기자로 일하던 2년 전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에서 시작해 2010년 유럽 재정위기까지 이어졌던 글로벌 경기 침체는 Z세대를 관통하는 큰 사건이었다. 미국과 유럽의 Z세대뿐 아니라 전 세계 Z세대가 영향을 받았다. 이들 세대가 경제적 보수성을 갖게 된 이유다. 젊고 글로벌한 시각과 뛰어난 정보 수집력을 갖고 있으며 기존 관성과 관행을 깨는 혁신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경제위기를 겪으며 함께 고생했던 부모와 동지의식을 갖고 있으며 ‘돈의 중요성’에 대해 매우 민감한 편이다. 소비와 투자에는 그 이전 세대가 비슷한 나이였을 때보다 신중한 성향을 보인다. 그러나 이들이 가진 경제적 보수성은 ‘신중함’일 뿐 ‘소비에 대한 거부’는 아니다. 오히려 그 어느 세대보다 강력한 소비권력을 지니고 있다. 이는 그들이 가진 ‘영향력’에서 나온다. 그런 면에서 Z세대는 ‘인플루언서블 세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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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이민자 부모의 구매에
영향을 미치는 모바일 네이티브

한 세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그들에게 익숙해지고 다시 새로운 세대로 관심이 옮겨가는 과거의 패턴을 생각해 보면, Z세대가 3~4년 전부터 관심과 조명을 받게 된 건 다소 이례적인 일이다. 5년 전만 해도 그들 세대 전체가 10대 청소년이었고 2021년 현시점에서도 절반 가까이는 10대다. 도대체 그들의 어떤 점이 경영계와 학계, 언론계의 이목이 집중되게 만들었을까? 무엇보다 그들이 가진 놀라운 소비(시장) 영향력 때문이다. Z세대 절대다수가 10대였던 2015년에 발표된 ‘카산드라 리포트’에 따르면, 당시 Z세대 부모의 93%가 ‘자녀가 가계 지출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대답했다. 2018년 발표된 IBM 기업가치연구소와 전미소매협회 공동 연구 리포트인 ‘유일무이한 Z세대’를 보면 Z세대가 가계 지출에 영향을 미치는 품목을 알 수 있는데, 식음료 구매에 77%, 가구에 76%, 여행에 66%, 외식에 63%, 전자제품 구매에 61%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물론 Z세대 이전에도 10대가 부모의 제품·서비스 구매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이전 세대와 다른 점은 ‘자기 자신을 위한 물품이나 서비스’나 ‘식음료’같은 저관여 제품뿐 아니라 ‘가구’, ‘여행’, ‘전자제품’ 등 고관여, 고가 제품과 서비스 구매에 대한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다. 이는 Z세대가 가진 부모와의 특수한 관계에 기인한다. Z세대는 부모를 비롯한 가족들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랐고, 신중한 소비자로 성장했다. 따라서 돈과 관련된 일에서는 부모의 의견을 잘 따르고 의견을 자주 주고받는다.
부모 역시 자녀인 Z세대를 신뢰한다. 모바일 네이티브로서 연결된 세상에서 늘 스마트폰을 쥐고 5~6개의 디바이스를 멀티태스킹 하며 정보를 취합해 합리적인 가격의 좋은 제품을 추천해 줄 수 있는 자녀들의 능력을 믿는 것이다. 여러 글로벌 조사에서 Z세대와 부모의 친밀성이 나타나고 있는데, 한국 조사도 예외는 아니다.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출간한 ‘2020 트렌드 모니터’에는 ‘청소년 시기 부모와의 관계가 좋은 편이었다’라는 Z세대의 답변(67.5%)이 밀레니얼 세대(52.5%)나 X세대(52%), 1차 베이비부머(51%)에 비해 훨씬 높게 나온다.
부모에게 미치는 영향력에서 출발한 Z세대의 소비 권력은 스스로 본격적인 경제활동을 시작하면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 Z세대의 멀티태스킹 및 정보검색 능력, 후기를 보고 광고성 후기와 진짜 후기를 걸러내는 능력 등은 이들의 구매 권력을 더 강화한다. 이들은 전자상거래의 지배자인 아마존(한국에서는 네이버, 쿠팡, 오픈마켓 등)과 함께 성장했다. 리뷰를 읽으며 소비해왔고, 자신들도 글을 남긴다. 리뷰 문화는 블로그와 소셜미디어, 유튜브 등에서 각 플랫폼에 맞는 형태로 다양하게 발전했다. 물건의 개봉기와 사용기, 각종 서비스와 경험 후기를 울리는 걸 전문으로 하는 리뷰어도 많다. 어릴 때부터 이런 리뷰와 사용기, 경험기를 보고 듣고 스스로 남기면서 자라온 Z세대에게 진짜와 가짜, 협찬성 리뷰와 실사용 리뷰 구분 등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여기에 소셜미디어의 해시태그라는 무기가 쥐어지면서 가치소비 후기를 인증하고 자랑하는 ‘플렉스’와 잘못을 저지른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도 자연스러운 일상의 일부가 됐다.

* 고관여 제품이란 소비자가 제품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이는제품을 말한다.(<->저관여 제품) influencer
‘공정함’과 ‘진정성’에 대한
평가와 사회적 영향력

2020년 여름 미국을 뜨겁게 달군 인종차별 반대 시위 및 캠페인은 Z세대가 밀레니얼 세대와 연합해 만들어낸 거대한 사회 변화 촉구 행동이었다. MZ세대는 해시태그를 통해 온라인상에서 행동에 나서는 한편, 인종차별 사태에 대한 기업의 생각을 묻고 답변을 회피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명백한 거부 의사를 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BLM(Black Lives Matter,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 대한 강경 대응 메시지를 ‘혐오 발언’ 으로 처리해 숨긴 트위터와 달리 그대로 노출한 페이스북에 대해 거세게 일어난 광고주 불매운동은 순식간에 페이스북에 560억 달러의 손실을 입히기도 했다.
이 세대는 그들이 사랑하는 브랜드인 스타벅스도 진정성 없는 캠페인을 전개하자 곧바로 응징에 나선 적도 있었다. 2015년 초, 첫 번째 BLM 시위가 대대적으로 벌어지던 시기 스타벅스는 ‘Race Together’라는 인종차별 반대 캠페인을 전개했는데, MZ세대는 스타벅스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과혐오 사건이 종종 일어나던 차에 벌어진 캠페인 자체의 진정성을 문제 삼았다. 또 직원들 유색인종 비율이 40%인 회사의 이사회 19명 중 유색인종은 3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스타벅스는 ‘진정성 없는 캠페인’을 내려야 했다. 이러한 MZ세대 영향력은 Z세대 단독의 놀라운 행동으로도 이어지기 시작했다. 미국 케이팝 팬들(다수가 Z세대다)이 온라인으로 유세장 티켓을 선점한 뒤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 ‘노쇼’ 운동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상징적인 첫 오프라인 유세를 사실상 실패하도록 만든 것은 이들이 가진 사회적 영향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촛불시위와 일본 불매 운동, 각종 선한 영향력 행사 캠페인을 통해 이들의 사회적 영향력은 확인된 바 있으며, 거듭된 성공의 경험은 이들에게 높은 ‘참여 효능감’을 만들어줬다.
시장에서 Z세대의 영향력은 사회적인 영향력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특히 이들 세대가 피해 당사자일 수밖에 없는 환경문제에 대해서는 ‘세대 피해의식’을 갖고 강력하게 문제 제기하고 있다. 기성세대가 망친 지구에서 자신들이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가야 하는 상황 자체는 공정하지도 않으며, 기업들과 정부의 기후 문제 해결 노력은 진정성이 없다는 것이다. 2019년 기후 정상 회의에 참석한 Z세대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연설에는 ‘어떻게 감히 우리에게 이럴 수 있는가?’라는 문장이 거듭 등장한다. 말 그대로 기성세대에 대한 분노다. 2021년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 열풍은 결국 Z세대 소비자/시민을 맞닥뜨린 자본시장과 기업들의 필연적인 선택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세대와 함께하는
새로운 시대

2020년 자본시장의 변화와, 글로벌 팬데믹, 미국 바이든 행정부 출범은 ESG를 기업 경영의 가장 중요한 화두로 만들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기후변화 대응,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심화된 사회 양극화 문제에 대한 해결,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기업 지배구조 전반의 조정에 대한 요구는 자본시장과 소비시장에서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자본시장에서의 요구와 소비시장의 요구는 결국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고려할 때 필연적으로 동시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특히 소비시장에서의 기업의 변화 요구는 시장과 사회에 대한 엄청난 영향력을 갖기 시작한 Z세대, ‘인플루언서블’ 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글로벌 Z세대는 기후 위기와 관련해 각국 정부와 기업에 대한 소송을 전개하고 있고, 사회적 책임 미이행이나 진정성 없는 해결 노력에는 응징을 가하고 있다.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유기업원이 2021년 초 진행한 대학생 의식조사 결과, ESG 관련 이슈를 고려해 ‘상품 가격 동일하다면 ESG 등급이 우수한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것’이라는 응답이 87%, ‘가격이 더 비싸더라도 구매할 것’이라는 응답이 60.9%로 나타났다.
인플루언서블 세대가 주도하는 세상, 정부, 공공기관, 기업이 Z세대가 펼쳐내는 ‘선한 영향력’의 파도를 타고 갈 수 있을지, 파도에 휩쓸려 큰 어려움을 겪게 될지 여부는 지금부터의 선택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