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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라의 고도
    경주
    VS
    인도양의 섬나라
    스리랑카

    • 글·사진. 송일봉 여행작가
  • 경상북도 경주와 인도양의 작은 섬나라인 스리랑카는 ‘불교유적지’라는 공통점이 있다. 스리랑카는 국교가 불교인만큼 나라 전체에 불교와 관련된 유적지와 유물들이 산재되어 있다. 이에 반해 경주에는 신라의 도읍지였던 만큼 불국사와 남산(금오산)을 제외하고는 신라와 관련된 유적지들이 많다. 조선 시대의 유적지인 양동마을과 옥산서원도 있다. 스리랑카는 불교유적지 외에 ‘실론 티’라 불리는 홍차가 유명하다. ‘세계 최대의 홍차 수출국’이라는 타이틀이 이를 대변한다. 스리랑카 홍차인 ‘우바’는 중국의 ‘기문’, 인도의 ‘다즐링’ 등과 함께 ‘세계 3대 홍차’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신라의 고도
경주

일명 ‘담 없는 박물관’이라 불리는 경주는 학창 시절에 누구나 한 두 번씩은 다녀왔을 국내 최고의 문화유적지다. 더군다나 석굴암, 불국사, 남산, 양동마을, 옥산서원 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로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명소가 되었다. 세계문화유산은 지구촌 곳곳에 산재해 있는 문화재들 가운데 가장 소중한 유산들이다. 이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려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WHC) 정기총회에 등록신청을 해놓고 2년 가까이 정밀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일단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 유네스코로부터 지속적인 재정을 지원받고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떠오르게 된다.

불국사
불국사

경주 토함산(해발 745m) 자락에 있는 불국사는 우리나라 불교예술의 전통을 면면이 이어오고 있는 사찰이다. 본래 2,000칸이 넘는 큰 사찰이었으나 수차례의 소실과 복원이 거듭되는 동안 규모가 많이 작아졌다. 1970년 2월부터 1973년 6월까지 이뤄진 대규모 복원공사로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불국사에는 다보탑(국보 제20호)과 석가탑(국보 제21호)을 비롯해 연화교와 칠보교(국보 제22호), 백운교와 청운교(국보 제23호), 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26호),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27호) 등과 같은 많은 문화재들이 있다. 불국사의 유물 가운데서도 특히 대웅전 앞에 있는 석가탑과 다보탑이 유명하다. 우리나라 석탑의 교과서와도 같은 석가탑(불국사 3층 석탑)은 간결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석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비해 마치 목탑을 연상케 할 정도로 화려함을 뽐내는 다보탑은 직선과 곡선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불국사 다보탑 불국사 부속암자인 석굴암의 본존불
남산

‘신라의 얼굴’ 또는 ‘경주의 영산’이라 일컬어지는 남산(금오산, 해발 494m)은 신라 992년(B.C.57~935년)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본 곳이다. 현재 남산자락에는 150여 곳의 절터와 120여 구의 석불, 90여 기의 석탑 등이 있어 그 자체가 훌륭한 답사여행지다. 남산의 참모습을 빠른 시간에 답사할 요량이라면 삼릉계곡 코스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일명 ‘부처님의 세계’라 불릴 정도로 많은 불상들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삼릉을 출발해 상선암까지 가는 동안 석조여래좌상, 마애관음보살상, 선각육존불, 선각여래좌상, 석불좌상(보물 제666호), 마애석가여래좌상 등 다양한 형태의 불상들을 만날 수 있다.
남산의 남쪽 끄트머리에 있는 열암곡도 한번 둘러볼만하다. 일명 ‘5cm의 기적’ 이라 불리는 ‘열암곡 마애불’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무게가 약 80톤 정도로 추정되는 ‘열암곡 마애불’은 발견 당시의 모습 그대로 엎드려 있다.

경주 대표 관광지 중 하나인 동궁과 월지, 안압지라고 불렸다
양동마을

경주시 강동면에 있는 양동마을은 야트막한 언덕과 골짜기를 배경으로 마을배치가 이뤄져 있다. 그리고 마을 입구는 좁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마을의 규모가 넓어지는 구조를 하고 있다. 이는 외부로부터 마을을 보호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양동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월성 손씨와 여주 이씨들이다. 양동마을의 상징적인 건축물인 서백당은 손씨 문중의 대종가로 1454년 입향조인 손소에 의해 지어졌다. 아산의 맹씨행단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민가다. 서백당의 당호는 “하루에 참을 인(忍)자 백번을 쓴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서백당과 대비되는 무첨당(보물 제417호)은 여주 이씨 대종가의 별당채다. 당호에는 “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한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 건물의 대청마루에는 흥선대원군이 잠시 머물렀던 것을 기념해서 쓴 ‘좌해금서(左海琴書)’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이 편액에는 “영남(左海)의 풍류(琴)와 학문(書)이 있는 집” 또는 “선비는 책을 읽어야 하지만 풍류도 알아야 한다”라는 뜻이 담겨있다.

옥산서원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있는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1491~1553년)을 봉향하기 위해 1572년에 세워졌다. 1574년에 사액서원이 되었으며, 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린 1871년에도 없어지지 않은 47개의 서원 가운데 하나다.
옥산서원의 정문은 역락문(亦樂門)이다. ‘역락문’이라는 이름은 논어 학이편에 나오는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에서 따왔다. 글씨는 조선의 명필 한석봉이 썼다. 옥산서원의 강당인 구인당에 걸려 있는 ‘옥산서원’ 편액은 본래 아계 이산해가 썼다. 하지만 1838년에 발생한 화재로 구인당과 함께 편액도 불에 타버리고 말았다. 현재는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로 유배를 가기 전 해인 1839년(54세)에 쓴 편액이 걸려 있다.
옥산서원에는 구인당 말고도 유생들의 휴식공간인 무변루, 유사(스승)들이 기거하던 양진재와 해립재, 유생들이 기거하던 동재(민구재)와 서재(암수재), 회재 이언적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체인묘 등이 있다.

옥산서원 유생들의 휴식공간인 무변루
인도양의 섬나라
스리랑카
부처님 치아 사원 캔디

스리랑카는 한때 ‘실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오랫동안 유럽 몇몇 나라의 지배를 받다가 1972년에 본래의 이름인 ‘스리랑카’를 되찾았다. 스리랑카는 인도 남쪽에 있는 섬나라다. 얼핏 보기에 섬의 형태가 마치 작은 나뭇잎 또는 눈물방울을 연상케 한다. 그 형태 때문에 혹자는 스리랑카를 가리켜 ‘인도양의 눈물’이라 부르기도 한다. 스리랑카의 역사는 싱할라 왕조가 시작된 기원전 483년부터 따지면 2,500년이 넘는다. 스리랑카의 대표적인 관광자원은 불교유적지다. 기원전 3세기 무렵에 불교를 받아들인 이후로 일찍이 찬란한 불교문화의 꽃을 피웠다. 아누라다푸라를 비롯해 폴론나루와, 캔디, 시기리야 등이 누요 불교유적지들이다.

아누라다푸라

스리랑카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인 아누라다푸라는 그 자체가 거대한 불교유적지다. 세계 각국의 불교 신자들을 비롯해 고건축에 관심이 많은 건축학도와 미술학도들, 그리고 세계적으로 저명한 문화재 전문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다.
현재 아누라다푸라에는 옛 왕궁을 비롯해 사원, 불탑 등과 같은 수많은 유적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일명 ‘스리 마하 보디 트리’라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보리수나무다. 수령 2,000년이 넘은 이 거목은 인도 아쇼카 왕의 딸이었던 상가미타 공주가 기원전 245년 무렵에 인도 부다가야의 보리수에서 꺾어온 나뭇가지를 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도 아누라다푸라에는 높이 55m의 커다란 흰색 불탑인 루반벨리세야를 비롯해 발굴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제타바나라마야 불탑, 아누라다푸라에서 가장 오래된 불탑인 투파라마, 그리고 인공호수인 티사웨바 동쪽의 바위를 뚫어서 세운 사원인 이수루무니야 사원 등이 있다.

풀론나루와

스리랑카 싱할라 왕조의 수도였던 폴론나루와는 아누라다푸라에서 100km쯤 떨어져 있다. 폴론나루와 옛 시가지 한가운데 있는 ‘파라크라마 바푸 1세’의 왕궁터는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찾는 명소다. 지금은 비록 앙상한 기둥과 벽을 드러내고 있지만 우아한 기품과 위엄이 건물 곳곳에 서려 있다. 자연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폴론나루와 옛 시가지에는 왕궁터 외에도 원형이 잘 보존된 투파라마 불당을 비롯해 폴론나루와에서 가장 예술적인 건물로 평가받고 있는 바타다게 불당, 그리고 스리랑카에서 가장 큰 비석인 갈포타 등과 같은 불교유적들이 있다.
또한 폴론나루와 최고의 명소라 할 수 있는 ‘갈 비할라’에는 커다란 바위를 깎아서 3체의 불상을 만들어 놓은 불교사원 유적이 있다. 이들 불상 가운데서도 맨 오른쪽에 누워 있는 열반불상은 그 길이가 무려 13.4m나 되어서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 아누라다푸라에서 가장 오래된 불탑인 투파라마
  • 폴론나루와를 대표하는 불교유적지인 ‘갈 비할라’
캔디

해발 500m 지점의 분지에 자리 잡고 있는 캔디는 유명한 휴양지이자 문화여행지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약간 비밀스런 느낌을 주는데다 스리랑카 고유의 전통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스리랑카에서 가장 스리랑카다운 도시’로 불리는 곳이다.
캔디 시내 한가운데 있는 캔디 호수는 1812년에 싱할라 왕조 마지막 왕이었던 ‘라자싱하’에 의해 조성되었다. ‘호반의 도시, 캔디’로서의 명성에 걸맞게 210 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잘 관리되고 있다.
캔디의 가장 대표적인 명소인 불치사는 ‘부처의 치아’를 모시고 있는 사원이다. 불치사는 새벽부터 해질 무렵까지 개방되어 있어서 누구나 자유롭게 참배할 수 있다. 하지만 ‘부처의 치아’가 공개되는 것은 1년에 한 번 뿐이다. 해마다 8월에 열흘 동안 ‘부처의 치아’를 일반에 공개하는 ‘에살라 페라헤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축제 가운데 하나다.

사자의 발톱이 조각되어 있는 ‘라이언 테라스’
시기리야

시기리야는 195m 높이의 거대한 바위산과 그 바위벽에 그려진 벽화로 유명한 곳이다. 바위산이 있는 곳은 사방이 드넓은 밀림에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다. 여행자들은 바위틈 사이에 있는 계단을 이용해서 바위산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다. 밀림 한가운데 솟아있는 바위산은 473년에 부왕인 다투세나를 죽인 아들 카샤파가 이복동생인 모갈란의 복수가 두려워서 세운 임시 왕궁이다. 이 바위산에는 카샤파가 당대의 예술가들을 동원해서 그렸다는 벽화들이 1,500 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다.
시기리야의 들머리 역할을 하는 담불라는 2,000여 년 전의 석굴사원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기원전 1세기 무렵. 남인도 타밀군에 쫓기던 싱할라 왕조의 발라감부 왕은 담불라의 야트막한 바위산을 은신처로 이용하게 된다. 훗날 피난기간 동안 정성껏 도움을 준 승려들을 위해 발라감부 왕이 석굴을 지어준 것이 담불라 석굴사원의 시초다. 현재 담불라 석굴사원은 다섯 개의 석굴에 모두 160여기의 석불이 모셔져 있다.

시기리야 바위산에 그려져 있는 벽화의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