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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 블록체인과 금융의 미래

    필요한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는 지혜

    • 글. 이병욱 ㈜크라스랩 대표(한국외국어대학교 겸임 교수)
  • 블록체인, 이미 알려진 대로라면 우리 사회에 전반에 걸쳐 다양한 변화를 가져올 기술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변화하는 삶에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명과 암을 분명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시선으로 블록체인과 금융의 미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블록체인과
금융
블록체인의 역할과 금융의 디지털화

블록체인 등장 후 11년이 흐르며 그 한계와 민낯이 드러났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예찬론자들도 있다. 2020년 5월 기준, 전 세계 22,000여 개의 중개소에서는 하루 110조 원 이상의 암호화폐가 거래된다. 그 종류만 5,500여 개이며 이더리움에서 대기 중인 토큰 수는 26만 5,000개에 이른다. 그 거래가 투자이든 도박이든 암호화폐 시장은 엄연한 현실이며 쉽게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것이 사실이다. 세계 각국이 FATF의 권고에 따라 암호화폐의 실체 규정과 관련 규제를 정비하고 있으나 그 여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한편 IBM은 하이퍼레저 패브릭(이하 패브릭)을 발표하며 ‘프라이빗 블록체인’이라는 정체불명의 명칭을 썼고, 4만여 줄에 달하는 소스를 공개했다. 이를 삼성, LG, 아마존 등이 복제하여 다양한 마케팅을 하고 있다. 패브릭은 비트코인과 유사성은 커녕 정반대의 속성을 가진다. 이 때문에 패브릭과 그 아류가 왜 블록체인이냐는 비아냥과 함께 굳이 블록체인이라는 명칭을 끌어들인 것은 비뚤어진 상술에 불과하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않다. 정반대의 목적물이 동일한 명칭을 사용하게 되면 그 명칭은 더 이상 분류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제 ‘블록체인으로 구축했다’라는 말에는 어떠한 정보도 들어있지 않은 셈이 되어 버렸다.
이런 용어의 혼란 속에서 정반대의 개념이 혼재된 잘못된 지식이 퍼지고 있으니 일반인들이 블록체인의 정체와 효용의 이해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한편, 암호화폐 커뮤니티의 일탈은 심화되고 있다. 5,000여 개나 되는 코인들 사이에서 보다 주목 받기 위해 프라이버시라는 명분으로 더욱 강력한 자금세탁 기능을 경쟁적으로 탑재하고 있다. 이미 2018년에 모네로, 대시 등의 다크코인류를 금지한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 중개소에서는 이들이 버젓이 판매 순위 최상위권을 차지하며 감독 당국의 자금세탁 방지 노력을 비웃고 있다.
디지털화라는 대세는 금융도 예외는 아니며, 이미 시행된 전자증권제도나 KRX 금 거래처럼 기초자산을 디지털화하여 보관과 거래의 편의성을 높이는 금융상품들이 보다 광범위한 유무형의 기초자산으로 확대될 것이다. 또한 오픈 API로 가속화된 협업은 고립된 개별 생태계이던 금융을 하나의 거대한 가상 생태계로 구성하고, 이러한 변화는 보호의 대상이던 개인정보가 현명한 활용의 대상으로 주목 받는 마이데이터를 통해 더욱 탄력받을 것이다. 기업의 미래는 ‘적절한’ 데이터의 수집과 활용에 있다. 생성된 데이터는 금융 인공지능의 핵심 재료이다.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양질의 정보를 확보하지 못한 기업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류에서 블록체인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금융의 디지털화라는 거대한 물결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는 몇 가지 사실을 살펴보자.

일반인들이 블록체인의
정체와 효용의 이해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블록체인과
미래
블록체인의 미래는?

2016년 IBM은 설문조사를 근거로 2019년까지 세계 주요 은행의 65%가 블록체인을 사용할 것이라 예측했고 그 수장인 기니 로메티는 블록체인을 빨리 도입하지 않으면 비즈니스에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공포 마케팅을 펼쳤다. 그러나 2020년인 지금 여전히 블록체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블록체인의 미래 예측에 설문을 인용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일까? 설문에 응한 기업 임원들이 기술적으로 난해하고 실체도 모호한 블록체인의 미래를 전망한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비트코인의 원 논문에는 블록체인이 단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는다. 결국 설문에 응한 이들이 상상한 블록체인은 동일한 대상이 아니라 응답자 수만큼 다양한 형태였을 것이다. 비전문적 응답을 단순 집계한 것이 글로벌 컨설팅 회사의 블록체인 전망으로 둔갑하고 이는 지속해서 인용되며 사고의 편향을 심화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에 뛰어난 소프트웨어란 없다

세상은 항상 트레이드 오프이다. ‘더 안전하고 더 좋은 수익’을 내는 금융상품이 없는 것처럼 모든 점에서 뛰어난 소프트웨어란 없다. 블록체인은 대부분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과는 반대로 현재 효용을 검증 중인 몇 분야를 제외한 대부분에서 기존 방식보다 좋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금융 선진화는 디지털 기술이 아닌 적절한 규제와 관련 규정의 정비와 밀접히 연계돼 있다. 블록체인을 둘러싼 수많은 오해 중 가장 보편적인 두 가지는 거래수수료 절감과 안전한 저장장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블록체인은 중복과 반복에 기반한 시스템으로서 오히려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며, 모든 데이터가 노출되어 정보가 전혀 보호되지 않는 비효율적 장치이다. 이 두 가지만 보더라도 블록체인에 관한 오해가 얼마나 보편적으로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겠다.

디지털 금융의 시류에서
사람들의 진정한 효용에
더 집중해야 할 것이다.
블록체인에서 파생된 개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연금술이 촉발한 유관 과학의 발전처럼 블록체인을 통해 사람들이 갈구하는 여러 관점이 표출된 것은 사실이다. 수많은 개념이 파생되어 현재 검증 중이지만 지면 관계 상 두 가지만 살펴보자.

디지털화 자산

‘디지털화 자산(Digitized Asset)’은 이미 가치를 가진 그 무엇을 관리와 유통의 편의를 위해 디지털화해서 보관하는 것이다. 디지털화 자산과 디지털 자산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디지털 자산(Digital Asset)으로 지칭하지만 이 둘은 다른 개념이다. 디지털화 자산은 그 기초가 되는 유무형의 자산이 존재하지만 디지털 자산의 내재가치는 0이며 기초 자산이 없다. 음악, 책 등의 저작물은 무형의 기초 가치를 가진 디지털화 자산의 예이며 디지털 자산이 아니다. 디지털 자산은 정보가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기록 그 자체가 목적물이 되는 것으로서 비트코인, 게임 아이템 등이 대표적이다. 기초 자산이 없는 디지털 목적물이 그 자체로 과연 가치를 가질 수 있겠냐는 질문은 흥미로우며 비트코인이 그 가능성을 일부 제시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디지털 자산을 위해 기존의 방식 대신 블록체인을 사용하면 수많은 문제점이 야기될 수 있다는 것도 동시에 알게 되었다.
한편 디지털화 자산의 경우 기존의 자산 유동화 증권(ABS) 대신 암호화폐 토큰을 이용하려는 시도도 있으며, 일부 업체는 샌드박스를 통해 금융위의 허가를 득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전자증권 대신 토큰을 사용하면 권리의 보장, 암호화 키의 분실, 사적인 토큰의 처분, 거래가와 기초 가격의 괴리 등 여러 관점에서 문제가 야기된다. 기존의 방식 대신 블록체인을 사용하면 오히려 더 많은 문제점만 야기될 수도 있는 것이다.

CBDC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법화이다. CBDC가 블록체인에 기반을 두는 것처럼 잘못 알려져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CBDC는 실물이 없는 디지털법화로서 실물인쇄의 필요성이 없다. 5만 원 권이 40여 일 동안 무려 8번의 공정을 거치는 것을 생각하면 인쇄가 사라지는 것 자체도 의미가 있지만 더 큰 의미는 돈에 이름표가 붙는다는 것이다.
관리의 편의성과 현금거래의 투명한 추적 입장에서 감독 당국은 이 방식을 선호하지만 이미 디지털화된 법화의 편리한 지급 결제 환경을 가진 대한민국에서 굳이 돈에 이름표가 붙는 불편함(?)을 감수할 수요가 있겠느냐는 점과 디지털 법화에 걸맞은 간편한 단말기와 결제 프로세스가 보급될 수 있느냐의 관점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CBDC의 핵심 중 하나는 현금만큼 사용이 간편한 디지털 결제 환경의 구축이다. 따라서 IT 환경이 상대적으로 낙후된 서구의 사례를 그저 인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선제적으로 표준을 만드는 IT 선진국다운 발상이 중요하다.
한편, 특화된 목적의 CBDC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컨대 한국은행의 결제기능에만 사용할 전용 CBDC 등 다양한 특수목적의 CBDC도 발행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매우 다양한 관점에서 CBDC는 흥미로운 주제이다.

중요한 것은 효용이며 인프라가 아니다

이 밖에도 탈중앙화 인증, 편리한 국제 송금, 안전 자산과 연계된 코인을 표방한 페이스북의 리브라 등 여러 기업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연구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 정보연구원(KISTI)이 예측한 2022년 국내 블록체인 시장 규모는 3,562억에 불과하다. 블록체인 프로젝트는 대부분 시범사업에 머물고 있다. 블록체인 사업의 내부를 잘 들여다보면 안전한 분산저장, 정보의 공유, 컨소시엄을 이룬 회사 간의 협업이 그 핵심 개념이다. 따라서 그 핵심은 전통적인 디지털 금융의 요구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가상자산과 관련해서도 내재가치가 0인 디지털 자산은 각국의 규제 정비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겠지만, 디지털화 자산은 더욱 다양한 형태로 금융시장을 이끌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사람들이 원한 효용이다. 그 효용의 성취에 반드시 블록체인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디지털 금융의 시류에서 사람들의 진정한 효용에 더 집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