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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경제의 의미와 함의
- 글.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
- 전 세계가 순환경제에 관심을 쏟고 있다. 단순히 환경 영향을 줄이는 것을 넘어 기업의 생산성을 향상하는 경쟁 우위 요소로 주목받고 있다.순환경제는 대량생산, 소비 폐기의 선형적 경제 모델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자원 사용, 제품 설계, 재활용 등 전 과정에서 환경 영향을 고려한다. 일회성 소비에서 벗어나 복원력을 키우는 것이 핵심인 순환경제가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에 관해 이야기한다.
재활용은
임시방편적인 조치에 불과
순환경제(Circular economy)란 말 그대로 물질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물질 소비 시스템을 말한다. 물질의 흐름이 원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의미다. 자원을 사용한 후 쓰레기로 버리지 않고 다시 사용하기 때문에 천연자원 투입과 쓰레기 배출을 거의 제로로 줄일 수 있다. 반면 선형경제(Linear economy)는 물질의 흐름이 직선의 형태를 띠는 물질 소비 시스템을 말한다. 자원을 캐고 제품으로 만들어서 사용하고 난 후 쓰레기로 버리는 한 방향의 낭비적인 물질흐름을 보여준다. 한정된 자원을 소비하고 버리기만 하니까 자원 고갈의 문제와 쓰레기 처리의 문제가 커질 수밖에 없다. 선형경제와 순환경제 사이에 재활용경제(Recycling economy)가 있다. 재활용경제는 물질의 흐름이 완전한 직선은 아니지만, 본질은 선형경제에 가깝다. 재활용을 하지만 한두 번 재활용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곧 쓰레기로 버려진다. 불완전하고 어정쩡한 재활용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재활용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발생 속도를 잠시 늦춘 임시방편적인 조치에 불과하다. 안타깝지만 오늘날 우리가 하는 재활용, 특히 플라스틱 쓰레기의 재활용은 재활용경제의 재활용에 불과하다.

물질흐름과
열린 고리 재활용
페트병 소비의 물질흐름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페트병을 분리배출하면 재활용업체로 가서 작은 조각으로 파쇄한 후 물에 깨끗하게 씻는다. 그다음 녹여서 국수가락처럼 뽑아 물에 식힌 후 작은 조각으로 자른다. 파쇄 후 세척한 조각을 플레이크라고 하고, 녹여서 작은 조각으로 만든 것을 펠릿이라고 한다. 플레이크를 1차 재생원료, 펠릿을 2차 재생원료 혹은 최종 재생원료라고 한다.
펠릿까지 만들면 신재료와 섞어서 다시 페트병으로 만들 수 있다. 페트병이 다시 페트병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같은 용도로 반복해서 재활용하는 것을 닫힌 고리 재활용이라고 한다. 순환경제에 맞는 물질흐름이다. 그런데 페트병이 다시 페트병으로 재활용 비율은 매우 낮다. 우리나라는 1%가 채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페트병 재생원료는 섬유로 재활용된다. 폴리에스터 섬유로 만들어서 옷을 만들거나 솜으로 만들어서 인형 등에 사용한다. 그런데 섬유제품은 다시 섬유로 재활용이 거의 되지 못하고, 대부분 쓰레기로 버려진다. 페트병이 섬유로 재활용된 후에는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이다. 이렇게 한두 번 재활용된 후 순환의 고리가 끊어지는 것을 열린 고리 재활용이라고 한다. 재활용경제에 해당하는 물질흐름이다.

순환경제의 관건,
오래 반복되어도 상태를 계속 유지 하는 것
물질도 자꾸 반복해서 사용하면 늙는다. 재활용하면 할수록 재생원료의 물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재활용 기술, 특히 플라스틱 재활용 기술로는 물질을 반복적으로 재활용하기 어렵다.
물질을 오래 반복해서 사용하면서도 젊고 생생한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순환경제로 가는 관건이다. 닫힌 고리 재활용을 하기 위해서는 물성이 나빠지지 않도록 계속 유지하는 업사이클링 기술이 필요하다.
지속적인 인구 증가와 경제성장, 기술의 발전, 소비 속도의 증가 등으로 인해 물질 소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자원조달과 오염물질 배출로 인한 환경오염의 문제가 인간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중국 등 저개발 국가들의 경제성장이 폭발적으로 이뤄지면서 자원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향후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의 인구 및 경제성장이 예상되기 때문에 자원 소비와 오염물질 배출량 증가의 기세가 2100년 이전까지는 수그러들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추세로는 지구 생태계와 경제 시스템 모두 버티기가 어렵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순환경제는
이제 산업의 문제
인간의 물질 소비는 유지하면서 자원 고갈과 환경오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2000년대 이후 순환경제 개념이 대두되었고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흔히 순환경제를 환경문제의 관점에서 협소하게 이해한다. 단순히 환경문제로 이해하면 순환경제의 큰 방향을 놓치게 된다. 순환경제는 이제 산업의 문제다. 환경문제가 임계점을 넘어 심각하게 진행되면서 기존 산업 질서를 흔들어서 재편하고 있다. 탄소중립경제와 순환경제는 산업의 기준을 바꾸고 있다.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기업이나 제품에 대해서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전 세계적인 인식이 거대하게 형성되고 있다. 좀 더 과장해서 말하면 산업의 패러다임이 회색에서 녹색으로 바뀌고 있다.
재사용과 재활용이 되지 않는 제품은 시장에서 판매되기 어려운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재활용되지 않는 예쁜 제품은 예쁜 쓰레기가 될 뿐이다. 쓰레기를 사지 않을 소비자의 권리가 점점 중요해 지고 있다. 물건을 잘 만들어서 파는 것만으로 기업의 책임이 끝나지 않는다. 쓰레기까지 책임져야 하는 시대다. 재활용 비용을 부담하는 것 정도로 생산자의 재활용 책임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재생원료를 다시 사용해 물질의 순환에 실질적으로 기여해야 한다. 생산자의 재생원료 사용의무 규제가 EU를 비롯해 미국 등에서 강화되고 있고, 우리나라도 관련 규제를 준비하고 있다. 재생원료 사용의무 시대가 오면 고품질의 재생원료 확보는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문제가 될 것이다. 재활용 체계를 선진화하는 것은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 필요하다.

재활용으로 변화할 시장
그리고 순환경제 시대
재생원료 사용의무화는 재활용 시장을 질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재생원료는 항상 천연원료보다 낮은 가격을 유지해야 하는데, 재생원료 사용 의무화가 되면 재생원료의 가격은 천연원료 가격의 족쇄에서 벗어나게 된다. 재생원료의 가격이 천연원료 가격보다 두세 배 이상 높아질 수도 있다. 고품질의 재생원료 생산을 위해서 투자한 만큼, 재생원료 가격을 통해서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재생원료의 안정적 조달과 변화된 재활용 시장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얻기 위해서 대기업의 재활용산업 진출이 활발해질 것이다.
순환경제 시대로 가기 위한 재활용산업의 구조 전환을 위해서 대기업의 참여는 필요하다. 다만 대기업의 재활용산업 진출이 중소기업의 퇴출을 의미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모델이 필요하다. 순환경제 시대에 새롭게 불거질 수 있는 사회적 갈등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기후가 변화하는 만큼 세상도 변하고 있다. 변화의 흐름을 거부하고 익숙한 것에 안주하려는 ‘환경꼰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순환경제의 의미와 흐름을 잘 이해하면서 변화된 시대에 도태되지 않도록 준비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