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우리는 왜 자야 할까?

글. 정기영 서울의대 신경과 교수, ≪잠의 힘≫ 저자

마감 기한과 성과를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줄인 건 잠이었습니다. 그 탓에 모니터 앞에서 집중력이 흐려지면 커피 한 잔으로 정신을 억지로 깨웁니다. 우리에게 ‘굿나잇’은 어느덧 사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잠은 역설적으로 우리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알아야 합니다. 잠의 의미를.

수면 중에는 뇌파 패턴이 달라지고, 근긴장·호흡·심박 같은
자율신경 조절이 바뀌며, 호르몬 분비 리듬도 재정렬됩니다.

잠은 ‘남는 시간’이 아니라 ‘정비 시간’

많은 사람들이 잠을 줄여 부족한 하루의 시간을 보충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잠은 ‘일을 다 하고 남는 시간’에 끼워 넣는 선택이 아니라, 뇌와 몸이 다음 날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정비하고 재충전하는 시간입니다. 안 좋은 수면 상태로 며칠은 버틸 수 있어도, 장기간 지속되면 집중력, 기분, 면역, 식욕, 기억 같은 기본 기능이 서서히 흔들립니다. “잠을 잤는데도 개운하지 않다”, “낮에 자꾸 졸리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자꾸 감기에 걸린다”와 같은 신호는 우리 몸의 정비 시스템이 충분히 돌아가지 못했다는 알람일 수 있습니다.
수면은 단순히 의식이 흐려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닙니다. 깨어 있을 때와 다른 방식으로 뇌가 작동하도록 설계된 생리적 상태입니다. 수면 중에는 뇌파 패턴이 달라지고, 근긴장·호흡·심박 같은 자율신경 조절이 바뀌며, 호르몬 분비 리듬도 재정렬됩니다. 즉, 수면은 ‘정지’가 아니라 모드 전환입니다.
스마트폰을 완전히 끄는 것과 ‘절전+업데이트 모드’로 두는 것은 다릅니다. 수면은 후자에 가깝습니다. 수면은 화면은 꺼져 있어도 내부에서는 정리와 업데이트가 진행되는 상태에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시험 기간에 ‘잠은 사치’라고 느끼는 학생이 많지만, 업데이트가 멈춘 기기를 하루 종일 쓰면 버벅거리듯 수면이 부족한 뇌는 처리 속도가 떨어집니다. 그래서 잠은 시간을 빼앗는 도둑이 아니라, 다음 날 최적의 성능을 발휘하기 위한 필수 과정입니다.

생체시계가 수면모드를 켠다

잠을 잘 자기 위해서는 각성모드에서 수면모드로 적절히 잘 전환이 되어야 합니다. 밤에 수면모드로 전환하려면 잠자는 시간을 정해주는 생체시계가 잘 작동해야 합니다. 생체시계는 우리 몸의 ‘예약 기능’입니다. 아침 햇빛을 보면 뇌는 ‘이제 깰 시간’이라고 인식하고, 밤이 되어 빛이 줄면 ‘이제 잘 시간’임을 알려주며 서서히 모드를 전환할 준비를 하게 합니다.
문제는 요즘 생활이 이 예약 기능을 자주 교란한다는 점입니다. 밤늦게까지 밝은 조명 아래 있거나, 침대에서 휴대폰을 오래 보거나, 주말마다 기상 시간이 크게 흔들리면 생체시계는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를 헷갈립니다. 그러면 몸은 누워 있는데도 뇌는 각성모드가 쉽게 꺼지지 않아 잠들기까지 시간이 길어지고(입면 지연), 자는 중에도 얕은 잠이 많아져 ‘잤는데도 개운하지 않다’는 느낌이 남기 쉽습니다.

밤마다 돌아가는 수면 프로그램

수면모드로 성공적으로 전환이 되었다면, 우리 뇌는 이제 본격적으로 잠의 긴 여정을 거칩니다. 잠의 여정은 평지가 아니라, NREM 수면과 REM 수면이 주기적으로 오르락내리락 반복되는 구조입니다.
NREM 수면은 뇌파가 느려지면서 뇌의 전반적 흥분을 낮추고 호흡과 혈압이 낮아지고 체온이 떨어지면서 회복과 안정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에 반해 REM 수면은 눈꺼풀 속에서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고(Rapid Eye Movement, 그래서 REM 수면이라고 합니다) 뇌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교감신경이 활성화되고 체온이 다시 오르며 생생한 꿈을 꾸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면 중에는 이 두 수면 상태가 주기적으로 번갈아 나타나며, 뇌와 몸은 정비를 순서대로 수행합니다. 도서관이 밤에 ‘정리(반납 정돈) → 재배치(분류) → 다음 날 준비(예약 처리)’를 하듯, 뇌도 밤마다 역할이 다른 단계들을 번갈아 운영합니다. 수면은 NREM과 REM이 반복되는 구조를 가진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각 단계가 안정적으로 적절히 작동하지 않으면 최적의 정비를 할 수가 없게 됩니다. 잠의 총량만 맞추는 방식은 프로그램을 중간중간 끊어 실행하는 것과 비슷해 성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보통 성인 수면에서는 NREM-REM이 한 세트로 묶인 주기가 대략 90분 안팎으로 3~5차례 반복되는데, 밤의 앞부분과 뒷부분에서 구성 비율이 달라집니다. 대체로 잠든 직후의 몇 시간은 깊은 NREM(서파수면)이 상대적으로 많고, 새벽으로 갈수록 REM 비중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수면 요구량보다 줄여 적게 자면, 단순히 ‘시간’만 줄어드는 게 아니라 수면 프로그램의 ‘후반부 단계(REM을 포함한 후반 사이클)’를 통째로 덜 수행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끊기지 않아야 작동한다

수면의 기능이 효율적으로 수행되기 위해서는 수면 도중에 끊김 현상이 없어야 합니다. 수면은 프로그램처럼 단계가 이어져야 효율이 나오는데, 중간중간 깨거나(또는 깨지 않았더라도 미세 각성이 반복되면) 프로그램이 반복해 초기화되면서 완료 처리가 줄어듭니다. 실제로 연구들을 종합하면 분절된 수면은 덜 회복적이며, 낮 동안 졸림과 기능 저하(집중·수행능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프로그램은 뇌(기억·학습)에서는 무엇을 정비하고, 몸과 감정(면역·호르몬·정서)에서는 어떤 항목을 점검할까요? 그 기능들을 알면, 수면이 부족하거나 질이 좋지 않으면 집중·기분·식욕·면역 체계가 함께 흔들리는 이유를 훨씬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깨어있는 동안 정보를 계속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입력만 하고 정리하지 않으면, 책상 위에 자료가 산처럼 쌓여 중요한 것부터 찾기 어려워집니다. 수면은 낮에 학습한 정보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제공합니다. 실제로 수면 중 뇌는 낮의 정보를 재생·정리하며 중요한 내용을 더 단단히 저장하여 잊지 않도록 작동합니다(이를 장기 기억 강화라고 합니다). 수면이 해마-대뇌피질 네트워크 재활성화와 시냅스 조절을 통해 학습 내용을 강화하고 불필요한 연결은 정돈하는 데 기여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밤샘 공부는 입력(공부 시간)은 늘리지만, 정리(수면)를 줄여 저장 품질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수면은 뇌만의 일이 아닙니다. 수면 중 면역 기능이 조정되고, 성장·회복과 관련된 호르몬 분비 리듬이 바뀌며, 스트레스 반응도 재설정됩니다. 수면이 부족하면 감정 조절이 흔들려 예민해지거나 불안·우울감이 커질 수 있고, 사소한 자극에도 과민해지기 쉽습니다. 또한 수면은 뇌의 노폐물 제거와 관련된 과정에도 관여한다는 연구가 제시되어 왔습니다. 수면이 부족하면 감정 조절이 흔들리기 쉬우며, 몸의 회복·면역 균형도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때 필요한 건 단지 마음가짐만이 아니라, 수면을 회복시키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잠은 시간을 빼앗는 변수가 아니라, 내일의 뇌와 몸을 정상 작동시키는 기본 인프라입니다. 다른 일 다 하고 남는 시간에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수면 시간을 먼저 확보하여 충분히, 그리고 양질의 수면을 취하는 것이 우리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고, 결국은 업무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수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수면을 우리의 생활에서 우선순위로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수면 중 뇌는 낮의 정보를 재생·정리하며
중요한 내용을 더 단단히 저장하여 잊지 않도록 작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