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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SS 금융가이드
전문가 리포트
  • 퍼펙트 스톰에 직면한
    세계경제

    • 글.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 ‘위드코로나’가 현실로 다가왔다는 기대에 부푼 가운데, 경제시장에는 오히려 빨간불이 들어왔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가 경제 팬데믹을 우려하는 상황. 저물가 시대가 시작된 데다 코로나19까지 겹쳐 경제 성장은 요원한 시국이 지속되고 있다. 지금 퍼펙트스톰은 어디까지 와 있는 것일까?

11월부터 우리나라는 일상회복(위드코로나)을 공식선언했으나 국내외 경제악재가 많아 위드코로나 경제활력보다는 위기관리 체제를 점검해야 할 상황이다. 글로벌 대형 악재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만이 감내해야 하는 리스크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디젤엔진에 필요한 요소수 부족이 국내 물류 및 교통을 마비시킬 수 있는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다. 앞으로 마그네슘, 리듐, 희토류 등에서도 유사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안심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한국은행이 발표한 분기별 실질 국내총생산(GDP) 실적에 따르면, 금년 1분기 성장률은 1.7%였으나 2분기 0.8%, 3분기 0.3%로 경제회복도 하기 전에 성장둔화 추세가 뚜렷하다. 수출은 호조를 보이나 투자와 민간소비 둔화가 심화되고 있다. 지난 10월 IMF는 세계경제 성장 전망치를 6.0%에서 5.9%로 하향조정하면서 경제악재를 대거 열거했다. 글로벌 회복세가 지속되나 모멘텀이 약화되고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대형 악재로 델타변이 확산과 팬데믹 지속, 공급 차질 등을 들었다.

퍼펙트 스톰,
중소형 악재 결합의
폭발력

기상학에서 퍼펙트 스톰은 중소형 폭풍이 열대성 저기압과 겹치거나, 몇 개의 태풍이 충돌하면서 초대형 폭풍으로 악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비관적인 경제전망으로 ‘닥터 둠’ 별칭을 얻은 뉴욕대 누리엘 루비니 교수가 복합적인 악재의 동시 발생으로 세계경제 시스템이 뿌리째 흔들리는 것을 퍼펙트 스톰에 비유한 이후 절체절명의 초대형 경제위기를 말할 때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게 일반화됐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관리 가능한 악재일지라도 몇 개 겹치면 폭발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으로 세계경제가 올스톱되었던 것이 대표적인 퍼펙트 스톰이다. 철옹성으로 보였던 대형 금융기관과 대기업들의 파산이 속출했고, 실업, 달러 가치 하락, 곡물 가격 인상, 물가 상승 등 악재들이 동시다발로 터졌다.
퍼펙트 스톰은 여러 경제악재가 누적되면서 폭발 임계점에 도달한 상태에서 조그마한 사건이 뇌관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러나 누적된 경제악재에 둔감해져 임계점에 도달했는지 모르거나 무심코 넘기는 경우가 많다.
지금이 그러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재정 지출로 각국의 정부부채가 위험 수준을 넘어섰고, 금융완화 정책으로 유동성이 팽창된 상황에서 공급망 차질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최근 30여 년 사이 최고 수준으로 높였다. 인플레이션에 선제대응하기 위해 미국 등 선진국들은 금리인상에 이미 나섰고, 금리인상은 가계와 정부 부채 문제를 악화시켜 소비 위축과 경제성장을 떨어뜨리게 된다.

미중 신냉전과
중국의 회색코뿔소

미중 갈등은 무역전쟁을 넘어 신냉전과 경제분리(디커플링)로 치닫고 있다. 시진핑 주석 집권하의 ‘중국몽’과 ‘중국특색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는 미국이 구축해 온 자유주의 시장경제 질서와 정면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도날드 트럼프 전 행정부 말기 미국은 중국을 적대국가로 규정했고, 조 바이든 현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정책을 계승하면서 미국의 첨단기술을 활용한 중국의 기술굴기를 봉쇄하는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세계경제 성장의 일등공신이던 중국 경제의 위기요소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부동산 과잉 투자 등 5개의 회색코뿔소(Grey Rhinos)가 언제든 충격파가 될 수 있다. 중국 제2의 부동산 재벌 헝다그룹이 사실상 파산했고, 석탄과 전기 부족 문제가 장기화되고 있고, 공동부유 정책에 따른 대기업 규제와 경제질서 조정 등으로 중국 경제도 살얼음판에 놓여 있다.
미중 대결 및 기술패권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다수 악재가 파생하면서 세계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호주가 중국의 정치체제를 비판하자 중국은 호주산 석탄 수입을 중단했다. 환경정책으로 중국 내 저품질 석탄광산을 폐쇄한 상황에서 호주 석탄 수입 중단은 중국 내 에너지와 전기 대란을 초래했고, 생산설비 가동이 차질을 빚으면서 공급 위기가 발생했다. 석탄 부족으로 농업용 요소 비료 부족을 우려한 중국이 요소를 원료로 한 요소수 수출을 중단시키자 우리나라에서는 요소수 대란이 벌어진 바 있다. 요소수를 사용하는 200만 대의 디젤 차량, 트럭 및 중장비의 운행이 중단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현재는 진정 국면이지만 이러한 위기는 언제라도 반복될 수 있다.
세계경제의 불안 요소의 하나는 세계무역기구(WTO)의 위상 악화와 보호무역주의 확산이다. 금년 초 나이지리아 출신 응고지 박사가 새 사무총장으로 취임했지만,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의 산업 보조금 지급과 ‘자국 우선주의’, 정부 개입에 의한 국내 공급망 확충 등 보호무역조치 확산에 WTO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유럽연합(EU)은 WTO 통상규범을 위반할 소지가 큰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CBAM) 시행 계획을 밝혔다. 기후변화 대응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만 일방적인 관세 부과를 수용할 국가는 얼마 되지 않는다. WTO 분쟁해결기구(DSU) 상소기구가 기능을 중지한 상황에서 중국, 러시아, 인도 등 신흥개도국들은 CBAM에 대한 대응조치로 무역보복에 나설 것이다. 많은 개도국들이 CBAM을 또 다른 사다리 걷어차기로 인식하고 있고, 중국은 중국 견제 목적이 작용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어 CBAM이 또 다른 통상분야 악재로 부각되고 있다.

취약해진
우리 경제

IMF가 올해 세계경제 전망을 하향조정하면서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을 4.3%로 유지했다. 코로나 백신 접종 비율이 높고,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으며 재정지출 카드를 동원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사항은 언제든 악재가 될 수 있다. 델타,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등 코로나 대확산 위기가 지속되고 있고, 위드코로나 상황으로 하루 코로나 확진자가 역대 최고치를 갱신할 것이란 우려가 상존하고 있다.
록다운(Lockdown) 방역 조치로 다른 국가들은 생산 차질이 컸으나 전면적인 록다운이 없었던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제조업 가동률이 높았고 해외 수요 증가로 수출이 호조를 보였다. 그 결과 9월과 10월에는 월간 수출액이 최고치를 달성했고 연간 1조 달러 무역실적도 10월 26일로 앞당기는 기록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LA항 등 미국 서부 항구 및 트럭기사 부족으로 육상 물류 차질이 풀리지 않고 있고, 국내에서는 요소수 사태가 다소 진정되었지만 언제든 반복될 수 있어 수출 호조가 지속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선진국은 금리 인상 등 금융시장 정상화와 인플레이션 대응에 돌입했으나 우리나라는 경제성장 악화와 가계부채 이자 부담으로 금리 인상에 소극적이다. 금리 차이는 자본 유출로 이어질 것이고, 저금리 기조 유지는 인플레이션 심리를 확산시킬 것이다. 더구나 올해 농작물 작황 악화와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식료품과 공산품 가격이 빠르게 인상되고 있다. 우리의 경제안정이 매우 시급한 상황이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투자자인 짐 로저스는 “내 평생 보지 못한 대 폭락”을 최근 언급했다. 지금까지 몇 번의 경제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 주요국들이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적극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대부분의 국가들이 위기극복에 재정을 너무 많이 투입해 재정적자가 심각해졌고 초저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에 따른 부채 누적과 금융부실이 심각해져 위기 시 정부가 동원할 있는 수단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 또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가계와 기업 부채가 심각한 상황이어서 경제여건이 악화되면 파산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
생산과 물류 차질, 에너지 대란 등 세계적 위기 요인에다가 우리나라는 지난 30년 간 축적된 중국과의 깊고 넓은 공급망을 조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요소수 대란과 같이 중국발 리스크가 다른 국가보다 많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3월 대권경쟁 포퓰리즘이 고개를 들고 있다. 경제여건이 허약해진 상황에서 다른 국가에는 가벼운 감기가 될지라도 우리나라는 폐렴으로 악화될 수 있는 상황이므로 정쟁보다는 확대되는 불확실성에 국가적 대비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