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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케어와 게임의
경계가
허물어지다- 글. 윤기영, 한국외국어대학교 겸임교수
- 헬스케어 시장에서 게임화의 역할은 자전거·달리기 같은 운동에 국한하지 않는다. 단순히 일상에서 건강을 지키는 것에 머물지 않고 최근에는 치매, 강박장애(OCD) 등 질병 치료에도 게이미피케이션 기술이 투입되면서 한층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경계가 허물어지고 시장이 확대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
성장하는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인간은 호모 루덴스(Homo Ludens)다. 호모 루덴스는 놀이하는 인간을 뜻하는 말로, 1938년 네덜란드의 역사학자였던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가 처음으로 사용했다. 호모 루덴스에게 유희라는 말은 단순히 논다는 말이 아니라, 정신적인 창조 활동을 가리킨다. 즉, 의료와 건강도 놀이와 게임을 연결할 때 더 큰 긍정적 결과를 거둘 수 있다. 건강을 위해 단순하게 하루에 일만 보를 걸어야 한다면, 걷기는 지루한 고통이 된다. 일만 보를 남과 경쟁하여 걷거나, 비디오 게임과 연계하여 걷거나, 일정한 걸음에 대해 심리적 보상이 주어진다면 그것은 놀이가 된다. 그럴 때 하루 일만 보를 달성할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디지털 헬스케어의 발달을 가져왔다. 놀이와 디지털 헬스케어의 결합, 헬스케어의 게임화는 만성적 질병의 관리에서 예방적 의료에까지 큰 효과를 보인다. 어떤 게임화된 디지털 헬스케어 시스템은 비만 치료에 있어서 대조군보다 감량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을 3배 이상 높였다. 당뇨병 환자의 경우 사망 위험은 16%, 합병증 위험은 30% 감소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게임화를 통해 예방적 의료가 대중화된 미국에만 매년 십만 명 이상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된다.
실제로 디지털 헬스케어의 시장 규모가 급증하고 있다. 글로벌 마켓 인사이트는 헬스케어 게임화의 전 세계 시장 규모가 2020년 250억 달러에서 2027년 650억 달러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하며 연평균 성장률이 14.6%에 달할 것으로 보았다. 다른 시장 예측기관의 전망은 이보다 못 미쳤지만 12%를 웃돌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일상 속 게임화를 통한 헬스케어
디지털 헬스케어의 게임화 사례는 다양하다. 망고헬스(Mango Health)가 개발한 앱은 환자에게 처방전에 따른 약물 복용을 알려주고 약을 먹으면 금전적 보상을 주거나 자선단체에 기부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앱은 많은 사람에게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다. 코히어로헬스(Cohero Health)도 천식 환자가 규정에 따라 흡입기를 이용하여 약물을 복용했는지 모니터링하며, 약물 복용에 따라 포인트를 지급하고, 그 포인트로 환자의 게임 캐릭터를 키울 수 있도록 했다.
리스폰드웰(Respond Well)은 물리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에게 게임 형태로 운동하도록 하고 반복 횟수도 확인한다. 리스폰드웰은 게임화를 위해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기인 엑스박스와 주변 기기인 키넥트(Kinect)를 이용한다. 연계 목표를 달성하면 포인트를 지급함으로써 자발적으로 운동할 수 있도록 유인한다.
우리나라의 챌린저스(Challengers)나 팩트(Pact) 같은 앱은 스스로와의 약속을 통해 운동이나 식이요법을 유인한다. 일정한 금액을 걸고, 스스로와 약속을 지키면 그 금액을 돌려받으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 본인이 건 금액을 잃게 되는 구조다. 금전이 아니라 일종의 심리적 보상을 주는 접근도 있다. 헙법(HubBub)은 사용자가 지정한 걷기 운동의 목표나 식이요법을 달성한 경우 사용자에게 배지를 지급한다. 인터넷 은행인 토스(toss)의 앱은 일정한 걷기 목표를 달성하면, 그 달성 정도에 따라 금액을 지급하며, 주변의 매장이나 산책지를 방문할 때에도 일정한 금액을 지급한다.
질병까지 게임으로 케어하다
일상에서 우리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헬스케어 사례에서 한발 더 나아가 특정한 질병을 진단하기 위해서 게임을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게임 에보(Evo)는 게임 플레이어가 알츠하이머병을 겪고 있는지 초기 진단에 활용된다. 알츠하이머의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PET) 검사가 필요한데, 그 비용은 2022년 기준 평균 140여만 원에 달한다. 에보는 효율적으로 알츠하이머를 초기에 진단함으로써 비용의 절감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게임과 디지털 헬스케어의 통합은 더욱 다양화되고 있다. 컴퓨터 게임인 폴드잇(Foldit)이 제시한 아이디어로 개발된 폴드잇 퍼즐게임은 단백질 구조 퍼즐을 푸는 것에서 치료법을 찾고 있다. 또한 디지털 약으로 비디오 게임 자체가 약이 되기도 하는데, 아키리인터랙티브(Akili Interactive)가 개발한 게임이 그것이다. 어린이의 과잉행동장애(ADHD) 증상을 개선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확대를 위해 제반 필요
전 세계 의료시장의 규모는 2018년 9.5조 달러를 기록했다. 2013년 이후 연평균 성장률이 5%에 달했다. 연평균 성장률이 5%를 지속한다면 2030년 의료시장 규모는 17조 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나라 GDP가 2020년 1.6조 달러에 불과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시장 규모가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의료비용의 절감과 의료의 효과를 위해서는 디지털 헬스케어와 개인 기반의 예방적 의료를 지향해야 한다. 정리하자면, 앞으로 늘어나는 의료시장 대부분이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이 될 것이다. 그리고 호모 루덴스인 인간의 헬스케어를 위해서는 디지털 헬스케어의 많은 영역이 게임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우리나라에 게임과 디지털 헬스케어를 융합한 다수의 스타트업이 등장하는 배경이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초고령사회로 진입함에 따라 의료시장은 더욱 커지고, 이에 따라 사회적 부담 또한 가볍지 않을 것이다. 현재 상태가 지속된다면 전 세계 의료시장에서 한국 사회가 차지하는 시장은 주로 국내 시장에 국한된다. 17조 달러의 의료시장은 한국 사회의 차세대 경쟁력을 펼칠 무대로 만들어야 한다. 기존의 제약 등에서는 경쟁력이 부족하겠으나, 디지털 헬스케어와 디지털 헬스케어의 게임화에서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디지털 헬스케어를 고려하여 원격의료를 전반적으로 허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의료 마이데이터인 마이헬스웨이가 공공성과 민간의 창업 혁신을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스타트업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의사의 수가 늘어야 한다. 따라서 대학에 의대 정원이 과도하다고 할 정도로 확대돼야 한다. 의협이 의사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는 점은 이해가 되나, 17조 달러의 시장을 지향해야 하는 것이지, 국내의 사후적 의료시장에만 집착할 일은 아니다. 원격의료와 의대 정원 증가에 대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지방 의가 종합병원의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는 체계를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건강보험, 생명보험 및 기타 암보험과 실비보험 등의 체계도 디지털 헬스케어의 게임화 생태계 구축을 위해 정비해야 한다.
한국 사회가 가야 할 길이 적지 않고, 손에 꼭 움켜쥔 이익을 놓도록 설득할 일 또한 작지 않다. 신발 끈을 고쳐 매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