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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케이션,
실험을 시작해볼까
- 글. 강준형 경제 칼럼니스트, 도서출판경제21C 대표
- 코로나19를 거치며 근무 형태를 혁신하는 여러 대안이 수면 위로 올라와 실행 중이다. 금요일을 휴일로 두는 주4일제를 도입하는 회사가 등장했고, 비대면 근무제를 선택하는 기업도 나타났다. 특히 국내에서도 휴가지에서 근무하는 ‘워케이션’이 하나의 흐름으로 부상했다.
코로나19, 일하는 방식을 바꾸다
잦은 야근과 비효율적 회의, 그리고 형식적 보고까지.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우리나라 기업문화에 있어 여전히 지적되는 부분이다. 특히 MZ세대로 대표되는 젊은 층에서 이 문제가 두드러지는데, 이들은 기존 기업문화를 불필요한 관행으로 인식하며 개선 요구에도 적극적이다. 입사 및 이직에 있어 급여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로 고려하는 게 기업문화일 정도다. 기업이라고 해서 이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대개 복리후생을 늘리는 수준에 그쳤을 뿐, 기업문화 및 경영 전반의 변화를 시도하진 않았다.
그 와중에 코로나19가 찾아왔다. 갑작스러운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에 대다수 기업은 재택근무로 대응했다. 불편하겠지만 몇 달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사태는 2년 가까이 지속됐다. 야근은커녕 회의와 보고마저도 비대면으로 이뤄지면서 그에 따른 인사고과 기준 마련이 시급해졌다. 임직원 모두가 동의하면서 재택근무 방식에도 효과적일 수 있는 기준, 바로 생산성이 그것이었다. 생산성만 확보된다면 직원의 업무수행 방식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기업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편 코로나19가 비교적 안정세에 들어서며 기업은 또다시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일부는 전면 출근을 단행했고, 다른 일부는 재택근무를 이어가기로 했다. 전자의 대표 격으로 테슬라를 들 수 있다. 일론 머스크는 “재택근무를 원하면 테슬라를 떠나라”라고 말할 정도로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단, 여기에는 일론 머스크의 생각뿐 아니라 자동차 산업의 특수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후자에는 아마존이 있다. 아마존의 경우 사무실 복귀를 발표했다가 원격근무를 유지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이 또한 전문인력의 대거 이탈, 그리고 미국이라는 지리적 요인이 작용한 것이다.
이처럼 개별 기업마다 처한 환경은 다르지만, 목적은 같다. 바로 생산성 확보다. 이번 글에서는 워케이션의 개념과 도입 현황, 전망 등을 짚어봄으로써 워케이션이 기업 생산성 확보에 어떻게 이바지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덧붙여 금융권의 워케이션 활용 방안 등에 대해서도 알아보도록 하자.
워케이션 개념과 도입 현황
워케이션(Workation)이란, ‘일(Work)과 여행(Vacation)’을 합친 용어로, 여행지에서 업무를 보는 것을 말한다. 업무 시간에는 일에 집중하고 퇴근 후 또는 주말에 여행지에서 휴식을 즐기는 방식이다. 따라서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한 달 가까이 여행지에 머무른다. 빌딩 속 일상을 벗어나 산·바다와 같은 자연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이를 통해 신선한 자극과 새로운 영감을 기대하는 것이 목적이다. 출근이 없다는 점에서 재택근무와 유사하나, 직원의 재충전까지 도모한다는 점에 큰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그냥 여행을 떠나면 떠났지, 굳이 여행지에서까지 업무를 보게 할 필요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는 워케이션에 대한 오해로,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업무 시간이라고 해서 업무에만 매진하는 건 아니다. 틈틈이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 휴게실에 안마의자를 들여놓는 것이라든지 탕비실에 원두커피를 제공하는 것 모두 직원의 재충전을 위한 크고 작은 복지다. 재충전이 창의력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생산성, 즉 업무성과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시간과 공간 탓인지 이러한 기업의 노력은 직원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워케이션은 이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식인 셈이다.
실제로 워케이션을 도입해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먼저 해외의 경우 카리브해에 있는 작은 섬나라 바베이도스를 빼놓을 수 없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변에 앉아 노트북과 커피 한 잔을 놓고 여유롭게 업무에 임하는 상상을 해봤을 텐데, 바베이도스에서는 현실이 된다. 디지털 노마드(디지털 유목민이라는 뜻으로, 공간에 제약받지 않고 자유롭게 생활하는 방식을 지칭)를 추구하는 미국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이른바 ‘디지털 노마드 비자’를 발행해준다. 비자 기간만 해도 1년을 넘을 정도로 충분하다. 섬 전역에 무료 와이파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며, 비자 소지자 자녀를 학교에 보낼 수 있는 혜택도 제공한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일본항공(JAL)이 대표적이다. 일본항공은 2017년부터 워케이션을 시행 중인데, 업무 시간에는 컴퓨터로 일하다가 업무가 끝나면 휴가를 즐긴다. 내용만 보면 그리 특별할 게 없어 보이나, 주목할 것은 일본 지역경제 활성화의 하나로 워케이션이 활용된다는 점에 있다. 워케이션을 계기로 지역 방문객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관광 프로그램도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우리 경제에 비출 때, 워케이션이 단순한 기업 경영방식을 넘어 지역 소멸에 대응하는 우수 행정정책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국내 워케이션 도입 사례로는 먼저 네이버 관계사 라인플러스가 있다. 지난해 ‘한 달 살기’라는 명칭의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도입했는데, 군산·양양·제주 등 국내에 한정했던 지역이 올해 7월부터는 국외로 확대됐다. 그 덕분인지 올해 입사 지원자가 지난해 대비 30%나 늘어났다. 다음으로 롯데멤버스는 속초·부산·제주를 대상으로 워케이션을 운영 중으로, 대상 인원은 전 직원의 45% 수준이다. 여기에 유연근무제를 통해 목요일에 퇴근할 수 있도록 해 효과를 높였다.
그 밖에도 국내 여러 기업이 워케이션을 도입하였으나, 아직은 해외에 크게 못 미친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 올해 들어서야 주52시간제가 전면 시행될 만큼 근로 시간 단축 자체를 복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크고, 무엇보다 워케이션 특성상 중소기업은 엄두조차 내기 힘든 일이다 보니 아직은 대기업과 IT·벤처 중심으로 도입하는 추세다. 국내 관광 활성화를 위해 한국관광공사가 워케이션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나, 글자 그대로 시범 단계라 기업문화로 안착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워케이션, 금융권 영향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금융상품이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의 휴가는 ‘7말 8초’로 대표될 만큼 특정 기간에 몰려 있다. 이때 워케이션 도입은 기업별 휴가 수요가 분산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동안 금융권은 휴가철을 맞이해 보험·환전수수료 등의 금융상품 및 서비스를 선보였는데, 기간도 짧으며 무엇보다 개인 고객 대상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워케이션 도입 시 기업 대상 여행상품 할인, 제휴사 서비스 제공 등 다방면으로의 확대가 기대된다.
두 번째는 지방은행의 수익성 개선이다. 그동안 지방은행은 지역 밀착 관계형 금융으로 성장해왔으나 수도권과의 격차 확대와 시중은행의 몸집 불리기 등으로 수익성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인터넷전문은행과 경쟁에도 밀리고 있다. 따라서 해당 지자체와 지방은행이 손잡고 워케이션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오피스 거점을 확보하고 지역 소상공인 대상 금융지원을 늘린다면 지방은행 본연의 목적에도 부합할 것이다. 실제로 BNK부산은행의 경우 야놀자, 부산신보재단과 손잡고 관광산업 중심의 워케이션을 확대해나가기로 발표한 바 있다.
세 번째는 금융권의 워케이션 도입이다. 금융권은 지난 코로나19 대유행 동안 시중은행과 증권사 중심으로 영업시간을 1시간 단축하거나 영업점 내 대기 고객 수를 제한하는 등 방역 조치에 대응한 바 있으며, 업무 외 불필요한 모임과 회식을 자제하였다. 최근 휴가철을 앞두고 코로나19가 재유행할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직원 안전과 워케이션의 효과 검증 차원에서 실행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여타 산업이 그렇듯 금융권 역시 사내 문화의 변화 필요성 검증, 인재 확보에 미치는 영향 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워케이션 도입 시 고려 사항
워케이션 도입 시 고려해야 할 부분은 크게 기업과 직원, 그리고 지역(지자체)이다. 먼저 기업의 경우, 워케이션이 가리키는 ‘일과 휴양의 양립’이란 결코 쉬면서 일한다는 뜻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오히려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쉰다는 접근이 필요하다. 따라서 여행지라 하더라도 충분한 업무 보고 및 평가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업무 성과만큼이나 중요한 게 공정한 평가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평가가 따르지 않는다면 직원들도 결코 워케이션을 반기지 않을 것이다.
직원 또한 워케이션을 통해 업무 생산성을 높인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같은 관점에서 워케이션 대상을 꼭 개인에 한정할 필요는 없다. 팀 단위의 생산성이 필요하다면, 그것에 맞게 워케이션을 구성하면 된다. 한편 워케이션의 대상이 되는 지자체의 경쟁도 치열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특성상 전국 어디건 KTX로 2시간 남짓이면 도착한다. 따라서 단순히 관광객을 유치한다기보다 “기업을 유치한다” 라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빈 사무실에 책상과 노트북만 제공하는 것과 복합기·미팅룸·사무 비품 등을 고루 갖춘 곳 중 기업이 중장기적으로 어느 지역을 선택할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일할 수 있는 공간을 갖추는 것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