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가꾸는 시간
책 모으는 재미가 쏠쏠해지는
나만의 원목 책꽂이 만들기
글_ 허승희 사진_ 황지현

가볍고 편리한 전자책이 대세라지만 여전히 종이책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종이책의 텁텁한 냄새와 투박한 책꽂이에 가지런하게 꽂힌 모습이 마음을 편하게 한다나. 두 남자의 손때 묻은 책과 잘 어울리는 나무의 흔적이 가득한 원목 책꽂이 제작 과정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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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드문 독서광들
분명 달력을 보면 가을이 왔음이 분명한데 뜨거운 햇볕에 날이 뜨거웠다. 고기영 조사역은 경복궁역에서, 박인준 조사역은 사당역에서 목공방이 있는 잠실까지. 소중한 주말 오전에다 날도 더운데 먼 길을 직접 찾아와준 것에 고마움이 느껴졌다.
원목 책꽂이 수업에 참여하려 토요일 오전을 기꺼이 양보한 두 사람은 금융감독원에 입사하면서 만난 소중한 인연이라고 서로를 소개했다. “동기로 만났는데 마음이 잘 맞아서 함께 여행도 다닐 만큼 친한 사이에요.” 박인준 조사역이 부서는 달라도 여전히 잘 지내는 사이라고 말하며 고기영 조사역과 눈빛을 주고받았다. 고기영 조사역도 그 말에 동의하는 듯 끄덕이며 축구나 등산도 함께 한다고 덧붙였다. 모든 직장인에게 소중한 주말일 텐데 그걸 포기할 만큼 책을 좋아하냐는 물음에 고기영 조사역은 “둘 다 정말 책을 좋아해서 얼마 전에 책도 서로 바꿔 읽었어요.”라며 이야기를 꺼냈다. 박인준 조사역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고기영 조사역은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추천했다고 한다. 책 제목까지 줄줄이 나열하며 독서를 즐긴다고 말하는 이들을 보니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진짜 독서가 취미냐는 말을 들었을지 상상이 되어 웃음이 났다.
“항상 들고 다니면서 읽어요.” 원목 책꽂이를 만드는 수업이라고만 안내했을 뿐 책을 들고 와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박인준 조사역은 커다란 가방에서 자연스럽게 책을 꺼냈다. 고기영 조사역도 아무렇지 않은 듯 책을 꺼내 보였다. 둘은 꼭 사전에 작전이라도 짠 듯 책을 두 권씩 챙겨온 것이다. 마침 잘된 일이니 책꽂이를 모두 완성하면 각자의 책을 꽂고 기념으로 사진 촬영을 하기로 약속하고 넣어두었다. 몇 마디 나누고 보니 어느새 목공방의 주인들처럼 그럴싸하게 앞치마를 차려입은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가깝지만 다른 두 남자
이날 고기영 조사역은 물푸레나무가 원료인 탄화애쉬로 페이퍼 트레이와 책꽂이 세트를, 박인준 조사역은 호두나무를 원료로 한 월넛으로 서랍과 책꽂이 세트를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다. 처음으로 할 일은 재단된 나뭇조각들을 퍼즐처럼 맞추는 것이다. 이걸 목공예에서는 ‘짜맞춤’이라고 부른다. 조각을 잘 살펴 파여 있는 홈과 맞는 것을 찾고 목공풀을 적당량 발라 단단히 끼우면 된다. 중요한 점은 완성 후에 풀 자국이 하얗게 남지 않도록 조심히 바르고 양이 많아 튀어나온 풀은 마르기 전에 잘 닦아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방 사장님의 능숙한 시범을 본 박인준 조사역이 먼저 풀을 들어 조립을 시작했다. 고무망치의 퉁퉁거리는 소리가 민망해질 정도로 작업에 진전이 없자 “그렇게 세게 쳐도 돼?”라며 고기영 조사역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괜찮다던 박인준 조사역은 한참을 애를 먹다 결국 공방 사장님의 손에 고무망치를 쥐여줬다. 사장님이 오래 쌓은 내공으로 살살 망치질하자 금세 나무가 제자리를 찾은 듯 홈에 쏙 들어갔다. 고기영 조사역은 그제야 안심된다는 듯 숨을 내뱉고 눈앞의 고무망치를 들었다. 고기영 조사역은 박인준 조사역과 다르게 힘을 주지 않고 고무망치를 통통 두드리며 작업을 순조롭게 이어갔다. 목재의 색감부터 확연히 다른 것을 고른 건 복선이었을까? 둘의 취향은 짜맞춤한 듯 척척 들어맞았지만, 성격은 탄화 애쉬와 월넛처럼 달라보였다.
각인처럼 새겨질 추억
준비된 조각을 모두 맞추고 나면 목공예에서 빠질 수 없는 톱질을 해야 한다. 두 사람은 작지만 위협적인 톱을 들고 신중히 톱질하기 시작했다. 고기영 조사역은 서걱서걱 강하게 힘을 주지 않아도 톡 하고 떨어지는 목재를 보고 뿌듯한지 속도를 붙여갔다. “이게 생각보다 잘 잘리네요.” 박인준 조사역도 질세라 작업 속도를 냈다. 다음은 풀이 잘 마를 때까지 다음으로 조립할 남은 목재의 표면을 부드럽게 갈아주는 그라인딩(Grinding) 작업이다. 큰 소리를 내며 무섭게 회전하는 트리머(Trimmer)의 날을 이용해 나무를 갈아주어야 손으로 직접 사포질할 일을 덜 수 있다고 한다. 계속 박인준 조사역의 작업을 관찰하던 고기영 조사역이 이번엔 먼저 시작했다. 사장님의 지도에 따라 거뜬하게 사포질을 하고 뒤따라 박인준 조사역도 금방 사포질을 마쳤다. 책꽂이를 완성하는 데까지의 과정은 계속된 반복이다. 풀을 바르고 끼우고, 자르고, 사포질하고.
“생각해보니 내가 대형 가구점에서 일한 적이 있구나.” 벌써 작업이 익숙해진 건지 묵묵히 작업하던 박인준 조사역이 무언가 깨달은 듯 내뱉었다. “어쩐지 잘하더라. 생각해보니 나는 친구 중에 목공방하는 애가 있었네.” 두 사람이 말없이 손만 바삐 움직이는 줄 알았는데 머릿속은 곱절로 바빴는지 자꾸만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삐져나왔다. 두 사람이 조잘대는 소리를 듣고 있다 보니 어느새 꽤 근사한 원목 책꽂이의 형태가 완성되었다. 만든 이를 새기는 각인과 색을 입히는 마감까지 하면 모든 작업이 끝난다. 두 사람은 ‘각인’이라는 단어에 긴장한 듯 말이 많아졌다. “여기 시를 써도 되나요?” 박인준 조사역이 슬쩍 물었다. “난 그냥 내 이름 새길래.” 연습용으로 주어진 나무토막에 각인을 새기던 고기영 조사역이 조용히 한마디 던졌다. 박인준 조사역도 써도 상관없다는 사장님의 대답을 듣고서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이니셜을 새겼다. 이날 작업 중 가장 집중하는 모습으로 각인을 마친 두 사람은 진이 빠졌는지 붓을 들고 과감하게 염료를 칠하며 마감을 시작했다. 마감 처리는 순식간에 끝이 났고 서로의 작업물을 비교하며 칭찬 타임이 시작됐다. 그러다 서로에게 숨기고 싶던 덜그럭거리는 서랍과 지나친 열정을 담은 사포질 때문에 뭉툭해진 모서리를 발견하고는 한참을 웃었다.
가을은 책 표지 위에 뽀얗게 쌓인 먼지를 털어내게 만드는 계절이다. 책장 앞에서 어떤 책을 읽을지 빼곡히 꽂힌 서적들의 책등을 한참 손끝으로 더듬던 때가 무색하게, 고심 끝에 고른 그 책을 언제 마지막으로 읽었는지 기억도 안 날 만큼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그런데 두 사람을 보며 느낀 것이 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흐른대도 마음속 한편에 각인처럼 새겨져 있을 날도, 그런 사람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둘의 취향은 짜맞춤한 듯
척척 들어맞았지만,
성격은 탄화 애쉬와 월넛처럼
달라보였다.
원목 책꽂이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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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영 금융교육국 조사역
원데이 클래스를 참여하는 게 처음이었는데, 공방 사장님이 너무 잘 알려주셔서 이렇게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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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준 공보실 조사역
요즘에는 스마트폰 없이 몇 시간을 무언가에 집중할 일이 잘 없는데요. 목공예 수업을 통해 이런 시간을 가져서 좋았습니다. 직접 만든 책꽂이에 좋아하는 책을 꽂는다고 생각하니 설레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