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가꾸는 시간

영롱하게 빛나는

자개의 멋에 반하다

글_ 허승희 사진_ 황지현

해변을 거닐며 예쁘게 반짝이는 조개껍데기를 주워본 적이 있을 것이다.
푸른 바다의 윤슬만큼 아름답게 빛나는 조개껍데기를 보고만 있기 아깝다고 생각한 건 우리뿐만이 아니다.
옛 선조들의 지혜로 지금까지 이어져 온 나전칠기를 금융감독원 직원들이 배워보았다.

  • 다시 보는 나전칠기

    나전칠기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어릴 적 할머니 댁에 가면 커다란 자개장을 보기도 하고 역사를 배울 때 교과서에서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전문가가 말하는 나전칠기는 우리가 아는 것과 달랐다.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연 단위가 소요되는 대단한 작업이었다. 이날 금융감독원 직원들은 나전칠기에 대해 배우고 자개를 이용해 다양한 소품을 만들기 위해 마포구의 한 자개 공방을 찾았다.
    공방을 들어서면서부터 비치된 물건들에 눈을 떼지 못한 네 명의 직원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도 자개 공예 작품에 관심을 보였다. “이거 너무 예쁘다. 난 뭐 만들지?” 이주영 조사역이 재잘대며 말하자 덩달아 너도나도 만들 거리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와인 오프너, 그립 톡, 손거울, 컵 받침, 책갈피 등 준비된 재료 중 한참을 고르던 직원들은 마침내 결정을 마쳤다. “난 컵 받침 만들어야지.” 김예린 조사역이 혼자서만 컵 받침을 고르자 그에게로 시선이 모였다. 다른 직원들이 재차 물어도 결정을 번복하지 않는 김예린 조사역의 완성작이 궁금해졌다.
    나전은 공예 기법 중 하나로, 광채가 나는 자개 조각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박아 넣거나 붙여서 장식하는 방식을 말한다. 한국에서는 칠공예의 장식 기법으로 나전을 주로 이용했기 때문에 나전과 나전칠기를 크게 구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종류의 자개를 늘어놓고 문화재수리기능자인 선생님의 이론 수업이 펼쳐졌다. 생소한 나전칠기 이야기에 모두 눈도 깜빡이지 않고 조용히 경청했다. 선생님이 조개껍데기 모양을 보고 어떤 조개인지 맞혀보라고 하자 다들 유치원생이 된 듯 정답을 던졌다. “전복이요!” 원혜윤 조사역은 정답을 맞히고 공방이 떠나갈 듯 기뻐했다.

예술의 혼을 담아서
  • 나전에는 주름질, 끊음질, 할패법, 시패법이 있다. 직원들이 쓸 자개는 준비되어 있어 자개를 톱으로 써는 주름질은 제외하고 얇은 상사 자개를 칼로 끊어 장식하는 끊음질과 자개 조각을 이용해 장식하는 할패법, 자개 가루로 장식하는 시패법을 이용해 소품을 제작했다.
    나전칠기라고 하면 원래 옻칠까지 해야 정석이지만 직원들은 자개 공예가 처음이기 때문에 나전칠기의 20단계 중 가장 재밌는 부분만 체험하기로 했다. 먼저 연습용으로 주어진 기물을 자개로 꾸미고 그 모양을 그대로 소품에 옮겨 담으면 완성이다. 다들 텅 빈 바탕에 어떤 자개로 어떤 그림을 담아야 할지 고심하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에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너무 막막한데?” 조민혜 조사역이 입을 뗐다. 그러다 준비된 자개를 뒤적거리다 고양이 모양을 발견하고는 “헐, 고양이. 이거 해야겠다.”라며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난 완전 전통 스타일로 갈 거야.” 이주영 조사역이 고민하는 소리를 들은 김예린 조사역이 덧붙였다. 이내 작은 공방은 집중한 네 사람의 숨소리로 가득했다. 이따금 선생님이 가져다주는 자개들 사이에서 고양이 모양만 골라내려 노력하는 조민혜 조사역은 그의 눈을 피해 고양이 모양의 자개만 쏙쏙 골라가는 원혜윤 조사역을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먼저 연습용으로 주어진 기물을
자개로 꾸미고 그 모양을 그대로 소품에
옮겨 담으면 완성이다.

“와, 김예린 왜 이렇게 잘했어? 몰래 예습했지!” 본인 작품에 집중하던 이주영 조사역이 김예린 조사역의 작품을 보고 한마디 하자 나머지 직원들도 눈을 돌렸다. 김예린 조사역은 새와 달, 바람 등의 모양 자개로 동양의 느낌을 표현한 것 같았다. “저거 보다가 내 거 보니까 너무 이상한데?” 원혜윤 조사역이 본인의 작품을 보고 실망한 듯 투덜거렸다. 돌아가며 서로의 작품을 칭찬해주자는 조민혜 조사역의 제안에 모두 알겠다고 끄덕이고는 다시 손끝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내 손안에 반짝임

김예린 조사역이 가장 먼저 작업을 마치자 다들 걱정하기 시작했다. “너네 아직 안 끝났지?” 원혜윤 조사역은 혹여 마지막 순서로 작업을 마칠까 바삐 손을 움직였다. 천천히 작업해도 된다는 선생님의 이야기에도 왠지 모르게 다급해 보이는 직원들이었다. 그림 같은 작품을 완성하고 마감 처리를 기다리는 김예린 조사역은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마감까지 완성된 컵 받침을 보니 ‘저기에 고작 컵을 올리기에는 아깝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민혜 조사역은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답게 고양이 모양 자개를 잔뜩 넣어 거울을 꾸몄다.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완성된 거울은 ‘조민혜’라고 이름을 써둔 듯 본인의 이미지와 잘 어울렸다. 원혜윤 조사역은 테두리를 살짝 비워 여백의 미를 느낄 수 있게 작업했다고 한다. 세심한 의도에 모두 놀란 눈치였다. 자세히 보면 조민혜 조사역의 눈을 피해 야무지게 모은 고양이 모양의 자개가 많이 들어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주영 조사역의 작품에는 다양한 동물이 들어있다. 나비, 토끼, 돌고래, 강아지 등 동물원을 연상케했다. 조금의 틈도 용납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여백을 가득 메웠고 그 덕에 화려한 거울이 완성돼 있었다.
직원들은 직접 만든 소품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며 자개의 반짝임에 감탄했다. 이내 서로의 완성품을 평가하다 뭐가 그리 웃긴지 저마다 웃음이 터졌다. 아이들처럼 환하게 웃는 직원들의 눈은 그 어떤 자개보다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전칠기
추천합니다
  • 이주영 조사역, 원혜윤 조사역

    나전칠기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돼서 좋은 경험이 된 것 같습니다. 직접 꾸민 손거울이 마음에 들어서 뿌듯하네요.

  • 김예린 조사역, 조민혜 조사역

    나전칠기뿐만 아니라 창작의 고통도 함께 배운 것 같아요. 만들 땐 힘들었는데 다 만들고 보니 예뻐서 기분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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