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 여행

재충전하고 싶다면

이번엔 통영

글 & 사진_ 임운석 여행작가

통영이 고향인 박경리 작가는 『김약국의 딸들』에서 통영을 ‘조선의 나폴리’라고 했다. 항로상 위치와 지형, 연중 온화한 날씨, 맑은 쪽빛 바다가 닮아서다. 500개가 넘는 수많은 섬을 품은 통영을 제대로 여행하려면 이른바 ‘한달살기’도 부족하다. 여건이 안 되면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이번엔 지친 마음에 활기를 챙겨볼 테다.

해안 절경을 감상하며 걷기 좋은 이순신공원

풍경이 마음을 위로하는 곳,
통영

통영은 조선시대 해군의 최고 사령부가 있던 ‘군항’이었다. ‘통영’이라는 이름도 삼도수군통제영을 줄인 말이다. 현대에서 들어와서 군항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해마다 8월에 한산대첩 축제가 성대하게 개최돼 군항의 면모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한산대첩의 현장이 궁금하다면 통영에서 가장 큰 섬, 미륵도에 우뚝한 미륵산을 찾아보자. 해발고도 461m에 불과하지만, 미륵산은 어엿한 ‘대한민국 100대 명산’ 중 한 곳이다. 정상에 오르면 한눈에 통영시와 한려해상이 내려다보인다. 손쉽게 정상까지 오르는 방법이 있다. 더운 날씨에 한려수도조망케이블카가 정답이다. 2008년 당시 국내 최장(1,975m)을 자랑하며 전국에 해상케이블카 붐을 일으켰던 통영의 랜드마크다. 10분 정도 외줄에 매달려 오르자 상부 정류장에 도착했다. 이후 500m 정도 산책로가 펼쳐지고, 그 끝에 이르면 미륵산 정상이다. 탁 트인 공간에 크고 작은 섬들과 그 사이를 오가는 배들까지. 한편의 대서사시를 보는 듯하다. 맑은 날엔 일본의 대마도까지 선명하게 보인다고 한다. 박경리 작가가 왜 통영을 나폴리에 견주었는지 첫눈에 직감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날개를 펼치고 기류에 몸을 맡긴 갈매기처럼 장쾌한 한려해상 속으로 비상하고 싶다.
하산은 케이블카 대신 미래사까지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기로 했다. 900m 남짓한 구간에 데크와 등산로가 잘 놓여 있어 크게 힘들이지 않고 내려갈 수 있다. 쉬엄쉬엄 걸어도 20분 정도면 도착한다. 편백숲으로 유명한 미래사는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 승려 법정이 1954년 출가한 곳으로 알려졌다. 미래사에는 중앙에 자리한 대웅전과 석탑, 요사채 두어 채가 전부인 작은 절이다. 그런데도 이 절을 찾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오로지 미래사와 연결된 편백숲 때문이다. 편백은 일본에서 자생하는 고유종이다. 이곳에 편백숲이 조성된 것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삼나무와 함께 조림한 이후다. 이것을 절에서 매입한 뒤 산책로를 조성했다. 편백은 천연 살균제로 알려진 피톤치드를 많이 방출하는 수종으로 유명하다. 피톤치드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줄여 면역력을 높이는 데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특히 여름에 많이 방출된다. 편백숲에는 미륵산 정상에서 본 것과 180도 다른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륵산 정상에서 장쾌한 풍경을 마주했다면, 이곳은 고요하고 안온하다. 그래서 복잡한 마음에 빗질을 하는 것처럼, 헝클어졌던 것을 정리하기에 안성맞춤이다.

  • 여유롭게 걷기 좋은 편백숲길

  • 이순신 장군 동상이 한산도를 바라보고 있다

통영의
풍경은 맛있다

빽빽한 편백숲에서는 한낮의 뜨거운 햇볕도 맥을 추지 못한다. 크게 심호흡해본다. 상쾌한 공기가 깊은숨을 따라 온몸 구석구석 기운을 전달한다. 숲에서만 맡을 수 있는 짙은 향기도 온몸으로 번진다. 먼저 코가 시원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샤워기에서 편백이 굵은 물줄기처럼 뿜어져 나와 온몸을 상쾌하게 적시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과 맞닿은 나무를 올려다봤다. 편백은 40m까지 높이 자란다고 하는데 맨눈으로 그 높이를 가늠할 수 없다. 다만 하늘 높이 우뚝한 나무가 한없이 드높을 뿐이다.
편백 숲길은 길지 않다. 불과 270m에 지나지 않는다. 빨리 걸으면 10분도 안 될 거리다. 하지만 숲길을 지하철 갈아타듯 걷는다면 그것만큼 무의미한 일도 없을 테다. 오감이 최대한 만족할 수 있도록, 모든 감각 세포를 숲을 향해 열어둔 채 가능한 한 느리게 걸어봤다. 편백을 기어 올라가는 애벌레 한 마리를 마주했다. 몸을 일자로 길게 늘이더니 한참 있다가 몸을 웅크리며 다시 전진했다. 느릿느릿 기어가는 모습을 한참 동안 보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녀석이 기어간 거리가 어림잡아 10cm 정도 되었다. 움직이지 않고 멈춰있는 것 같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았다. 녀석은 다만 천천히 이동할 뿐이었다. 내 기준이나 잣대로 상대를 평가하거나 옥죌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그가 누구든 나와 같을 필요는 없으니까.
숲의 냄새도 맡고, 나무껍질의 감각도 느끼며, 숲의 온갖 소리에도 집중했다. 애벌레처럼 천천히 천천히···. 어느새 오솔길 끝자락에 도착했다. 놀랍게도 그곳엔 이전과 다른 풍경이 깜짝 선물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미륵산 정상에서 봤던 풍경이 다시 펼쳐진 것이다. 호수처럼 고요한 한려수도가 울창한 산림 너머에 액자처럼 걸렸다. 고양이 가족이 풍경의 주인행세를 하며 사람을 반긴다.

  • 박경리 작가가 살았던 서피랑

    이순신공원의 장미터널

  • 한려수도조망케이블카를 이용하면 수월하게 미륵산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뚜벅이 여행자의 성지,
통영

통영을 여행하다 보면 현지인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외지인들이 감탄을 연발하는 풍경을 통영사람들은 그저 마을공원처럼 친근한 공간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순신공원이 대표적이다.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대파하면서 해상주도권을 장악한 한산대첩을 기념해 조성한 공원이다. 한산대첩의 현장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를 비롯해 이순신장군 동상, 학익정 정자, 산책로, 잔디마당, 황톳길 등이 조성돼 있다.
공원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에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장군을 맞이하듯 늘어서 있고, 그 너머에 오르면 비로소 공원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다를 향해 돌진하듯 잰걸음으로 데크 전망대에 향한다. 하늘과 맞닿은 섬들과 드넓은 바다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공원 탐방은 먼저 한산대첩의 현장을 두 눈으로 감상한 뒤, 맨발로 황톳길을 걷고, 망일봉 자락에 있는 학익정에 올라 여유롭게 ‘바다멍’에 빠져보는 거다. 발 씻는 곳이 있으니 염려하지 말자. 이순신공원은 최근 SNS에서 ‘수국핫플’로 인기가 높다. 신부의 부케를 닮은 화려한 수국과 푸른 바다가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자아낸다. 이순신공원의 수국은 6월 중순에 만개한다.
이순신공원 인근 강구안 주변에 통영의 핵심 여행지가 굴비처럼 엮여 있다. 통영에 오면 꼭 한번 먹는다는 충무김밥과 통영꿀빵 거리가 강구안 주변에 모여 있다. 동쪽과 서쪽 비탈에 있는 동피랑과 서피랑도 챙겨볼 만하다. 사진 찍을 곳이 유난히 많은 동피랑은 우리나라 벽화마을의 원조로 손꼽히고, 서피랑은 박경리 작가가 살던 곳으로 이야깃거리가 풍성하다. 99계단, 피아노계단 등 볼거리 또한 차고 넘친다.
삼칭이 바윗길에서는 자전거 라이딩이 좋다. 들쑥날쑥한 해안선을 따라 4km가량 이어진다.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우람한 삼칭이 바위를 볼 수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옥황상제의 근위병과 사랑에 빠진 선녀가 돌로 변한 것이라 한다. 구간에 작지만, 그래서 더 여유로운 수륙해수욕장이 있다.

여행 정보

문의: 통영관광안내소 055-650-0580, 2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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