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경제트렌드
초저가와 프리미엄의 공존
앰비슈머
그들은 누구인가?
글_ 한다혜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소비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평균값은 무의미해진다.
모래시계 꼴로 굳어지는 소비 패턴에 기업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고객을 물색하고 있다.
기업을 움직이는 앰비슈머, 이들은 누구이며 어떻게 시장을 움직이는지 고찰해본다.
모래시계가 된 대한민국
투자에는 ‘바벨 전략’이라는 말이 있다. 헬스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 끝에 무게를 단 바벨처럼, 중간위험도의 자산은 제외하고 매우 안정적인 자산과 고위험·고수익 자산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두 극단으로만 구성하는 전략을 말한다. 이는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공존하는 불확실한 경제 상황에서 수익성과 안정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추구하려는 전략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바벨 전략이 최근에는 투자를 넘어 ‘소비’에서도 많이 관찰된다. 한 명의 소비자에게 초저가와 프리미엄이라는 뚜렷하게 양극화된 소비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소비자를 ‘앰비슈머(Ambisumer)’라고 부르는데, 말 그대로 양면적인 소비자(Ambivalent + Consumer)를 뜻하는 말이다.
평소에는 초저가와 가성비를 지향하지만, 그렇게 알뜰살뜰 줄인 지출을 프리미엄한 ‘작은 사치(스몰 럭셔리)’에 쓰는 모습을 보인다. 즉, ‘실속’과 ‘자기만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추구하는 전략적인 소비자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시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소비 행동을 보일까?
바벨 전략이 최근에는
투자를 넘어
‘소비’에서도 많이 관찰된다.
한 명의 소비자에게
초저가와 프리미엄이라는
뚜렷하게 양극화된
소비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양극화
앰비슈머들은 외식 시장에서 두드러진다. 치솟는 물가 상황에 ‘런치 플레이션(런치+인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면서 직장인들이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구내식당과 편의점 도시락을 많이 찾는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커피 역시 저가 커피가 강세를 보이는데 실제로 NH농협카드가 발표한 ‘저가 커피 프랜차이즈 소비 현황’에 따르면 관련 이용금액과 이용 건수 모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에서는 프리미엄 외식의 대명사인 파인 다이닝과 오마카세의 다양한 응용 버전이 등장하며 화제를 끌고 있다.
커피를 코스 형태로 즐기는 ‘커피 전문 오마카세’나 반려견을 위한 7가지 코스 요리를 선보이는 ‘반려견 파인 다이닝’ 등이 SNS 상에서 인기다. 10만 원이 훌쩍 넘는 호텔 빙수는 연일 화제가 되며 소비되고, 올해 2월에 선보인 강남 신세계의 프리미엄 디저트 전문관은 개장과 동시에 핫 플레이스에 등극하며 일각에서는 매장이 열리자마자 방문하는 ‘오픈 런’ 현상까지 목격되기도 했다. 뷰티 역시 돋보이는 양극화 시장이다. 최근 저가형 균일가 생활용품점인 ‘다이소’는 초저가 뷰티 아이템을 선보이며 업계의 신흥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에는 소수 10대 청소년들의 화장품 구매처로 여겨졌던 다이소가 이제는 전 연령대를 위한 합리적인 저가 화장품 판매처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실제로 3천 원짜리 기능성 앰플과 컬러 밤 등은 소비자 사이에서 명품 화장품 저렴이로 불리며 연일 품절 대란을 일으킬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동시에 프리미엄 뷰티도 성장하는 추세다. 일례로 ‘니치 향수’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니치 향수는 전문 조향사가 만든 프리미엄 원료와 기법으로 제조한 향수로 소수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한 고가의 프리미엄 향수를 뜻하는데, 최근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스몰 럭셔리’ 아이템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는 실적으로도 나타나는데, 신세계인터내셔날에서 판매하는 고급 향수 브랜드 '딥티크'의 올해 초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1.1% 증가했다.
여행, 명품도 예외는 없다
여행업계도 양극화되는 추세다. 코로나19 이후 여행 소비는 꾸준한 회복세를 보이는데, 2024년 1분기 국제선 여객 수는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1분기의 95% 수준까지 회복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물가 상승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으로 알뜰 여행을 추구하는 소비자가 많아지는 동시에 프리미엄 여행객들도 덩달아 증가하며 ‘여행 양극화’가 주요 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우선 가성비 여행을 추구하는 여행객이 크게 늘었다. 최근 여행 리서치 전문기관인 컨슈머인사이트는 국가별 해외여행 비용과 만족도를 중심으로 ‘가성비 지수’를 발표했는데, 가성비 우수 여행지 1위로 일본과 태국이 뽑혔다. 이 두 나라는 2023년 한국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방문한 여행지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크루즈 여행이나 럭셔리 기차 여행 등 프리미엄 여행을 찾는 고객들도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여행사의 프리미엄 패키지 상품 개발 및 판매도 확대되고 있으며, 국내 일부 특급호텔은 역대 최대 매출 달성한 것으로 나타날 정도로 프리미엄 여행 선호도가 높다.
마지막으로 유통업계 전반에서도 양극화가 주요한 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초저가를 내세운 중국발 C 커머스1)의 열풍이 거세다. C 커머스는 천 원 단위의 초저가 전략을 펼치며 극단적으로 가격을 낮추어 소비자를 유인했는데 효과는 굉장했다. 알리익스프레스(Aliexpress) 앱은 2023년 7월 이후 9개월 연속 사용자 수 증가를 기록하며 약 900만 명의 월간 사용자를 기록했고, 테무(TEMU) 앱 역시 2023년 8월 출시 이후 8개월 연속 사용자 수가 늘었다.
프리미엄 유통의 대명사인 백화점 역시 꾸준히 성장 중이다. 일본 오사카에 위치한 한큐 백화점은 100만 엔 이상의 고가품 매출이 2023년 6월에는 전년 대비 30% 증가했다. 명품 브랜드를 찾는 소비자들 덕택에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매출을 회복한 것이다. 국내에서도 더 현대 서울이 오픈 3년 차에 누적 방문객 1억 명을 돌파한 것은 물론이고, 연 매출 1조 원을 돌파하는 최단기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 중국(china)과 전자상거래(electronic commerce)가 합쳐진 말로 중국계 e-커머스를 뜻한다.
평균적인 무난함을 전제로 다수의 고객을 확보하는 시대는 저물고,
초저가와 프리미엄 중 확실한 노선을 정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펼쳐나가야 살아남는 시대가 되었다.
시장의 변화를 이끄는 사람들
앰비슈머의 등장으로 시장이 변화하고 있다. 바야흐로 중간과 평균이 사라진 평균 실종의 시대다. 평균적인 무난함을 전제로 다수의 고객을 확보하는 시대는 저물고, 초저가와 프리미엄 중 확실한 노선을 정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펼쳐나가야 살아남는 시대가 되었다. 중요한 것은 앰비슈머가 특정한 세대나 집단에 국한되는 특징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불황기에 지출을 줄여야 하지만 동시에 이전의 소비 수준을 유지하고 싶은 양가감정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한정된 자원 속에서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어떻게든 채워가려는 이들의 노력은 곧 ‘앰비슈머로의 진화’로 나타난다. 불경기에 모든 소비가 위축되는 것만은 아님을 증명하는 이들의 행보에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